온라인과 권력의 통제 그리고 리모콘저널리즘 얼마전 미네르바 사건이 있었다. 만약 미네르바가 외국에
거주했다면 사건은 어떻게 전개 됐을까? 정권이 똑똑했다면 미네르바는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지금의 미네르바가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국가 혼란의 원인으로 다른 논객을 지목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정부가 불특정다수를 견제하기
위해서 부러 미네네르바라는 아이콘을 만들었고, 그 아이콘을 잡아 족치는 방법으로 공포를 효과적으로 유포시켰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반대로
미네르바가 외국에 거주했음에도, 국가혼란의 원인으로 지금의 미네르바를 지목했다면 이건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정부가
돌탱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에 대한 국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된다. 정부란 영토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다. 다시말해, 그 비즈니스의 한계가 딱 영토만큼이라는 이야기다. 심심치 않게 들리는 출국금지는 이런 불안의 정황을 잘 묘사한다.
정부와 온라인 간의 긴장은 운명이 아니라 필연이다. 가장 강력한 지배인 정부의 국경을 온라인은 뛰어넘기 때문이다. (비행기나, 전화처럼) 단순히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의 국민들에게 아바타라는 옷을 입히고 온라인으로 이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시대와 정부는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중독이라는 폄하는 온라인에 대한 낮은 수준의 견제지만, 이 충돌은 점점 구체화될 것이고 보다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를테면 범죄의 이미지를 덧칠하는 경우가 있겠다. 얼마전 강병규가 도박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대중으로부터 다구리를 당했다. 이 사건은 범죄라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조작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도박은 여느 범죄와 다르게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도박이 타인에게 미치는 폭력성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이고
추정적이다. 도박이나 비즈니스나 리스크와 대박의 교환가치에 방점이 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유사하다. 게다가 정부는 복권이나, 경마장, 카지노와 같은
국영도박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도박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다. 또, 도박이 죄가 되지 않는 국가도 많다는 점에서 도박은 살인이나 절도와 같은 인류 보편적인 죄악이 아니다. 도박을 두둔하는게 아니다. 도박 = 범죄, 범죄자 = 나쁜놈, 강병규 = 범죄자, 강병규 = 나쁜놈. 그의 죄목과 무관하게 범죄라는 이미지만으로도 강병규는 나쁜놈이 된다. 마치 질병에 대한 공포가 비둘기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범죄를 이용한 대중 조작은 단지 강병규만을 향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강병규는 인터넷을 이용해 도박을 했다. -> 인터넷이 없었다면 강병규는 도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도박의 책임에서 인터넷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말해, 인터넷 도박은 인터넷에 대한 부정적 프래임으로 확장되어 악용될 수 있다. 물론, 인터넷을 둘러싼 수많은 잡음들이 있다. 저작권, 중독, 악플에서 도박까지. 이런 문제들은 이 시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과대포장함으로써 인터넷에 대한 규제로 악용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온라인 도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점. 마카오와 같은 현지의 실정법상 도박사이트의 운영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국가된 입장에서는 국외의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이 위협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인터넷 도박으로 그치지 않고, 인터넷 문화전반으로 확대되면 국가의 통제력은 급속히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입장에서 도박사이트는 매우 휼룡한 롤모델이 된다.
리모콘저널리즘이란 저널리즘의 대상을 고국으로 하지만, 법인과 서버 뿐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까지 외국에 두는 저널리즘 활동을 말한다. 이것은 현지에 미디어조직이 세워지는 로컬저널리즘과 대비되는 것이다. 리모컨저널리즘의 비즈니스 모델은 여론에 대한 권력의 통제다. 이 통제가 강해질수록 리모컨 저널리즘은 반석위에 선다. 통제의 교란. 후속 포스팅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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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
matrix 2009/02/23 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