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행성 플래닛의 소멸 곰브리치는 이 그림을 가리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치켜세웠다. 나는 이 그림을 통해서 아름다움의 다의성을 보는데, 이 여인을 여자로 보면 추하고, 어머니로 보면 아름답다. 한 때는 이기적인 꿈도 꾸었을 이 여인은 어머니가 되면서 여자를 버린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어찌 미학을 가르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다. 누구나 머릿속에 제 매트릭스를 가지고 산다. 그것은 머리 밖의 매트릭스와는 또 다른 것이다. 처음엔 자신이 그 세계의 온전한 주인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수록 그 안에 영향력 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돈, 명예, 지식, 사랑.... 마침내 자식이 등장하면서 아 그때야 알게 된다. 처음에 자신이 제 세계의 온전한 주인일 수 있었던 것은, 부모가 제 세계의 주인임을 포기한 결과라는 것을...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로 조용히 물러난다는 거 참 서글픈 위대함이다.
나는 깊게 갈라진 저 주름을 통해 우리 부모님의 인생을 본다. 당신들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을 때 우리 집은 하드코어 하게 망했다. 나는 당신들이 모든 밑바닥을 몰래 경험했다는 것을 조금 안다. 그 억척스럽고 느려터진 세월을 건너오면서 당신들에게 여가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제 자식을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이 장성해서 집을 나설 때 당신들은 우두컨해보였다.
좀 많은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산과 친구들을 찾았고, 엄마는 플래닛과 플친들을 찾았다. 플래닛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겨냥해 만든 서비스로, 젊은 이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중장년층만 남은 어르신들의 서비스다. 다음 링크에서 어르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특히 댓글에 주목하자.
플래닛 바로가기하지만, 엄마의 플래닛 생활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때는 문학소녀를 꿈꿨다는 엄마는 그 모진 세월을 견디느라 변변한 책 한 권 읽지 못했고, 자기 완결성을 지닌 글이라고는 써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도 마음은 섬세한 이팔이신지라 부족한 표현력과의 괴리 때문에 자주 주눅이 든다. 그래서 댓글 하나 쓰는 게 그렇게 힘이든다. 청주집에 가기만 하면 아들에게 그놈의 댓글 퇴고를 또 부탁한다. 귀찮다. 하지만, 괜찮다.
컴퓨터 옆에는 너덜너덜해진 노트가 한권 놓여 있다. 그 속에는 수줍은 글씨로 또박또박 쓰인 시가 가득차있다. 엄마는 그걸 그렇게 쟁여두고 있다가 생각나면 댓글로 올린다. 카피 앤 페이스트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아무리 가르쳐 드려도 그게 잘 안 되고, 맛이 다르단다. 키보드를 훠이훠이 저으며 한타한타 조심스럽게 타이핑을 한다. 그러다 뭐라도 잘못 건드리면 군소리 없이 다시 시작이다. 나는 종종 사려 깊지 못한 UX에 분개하지만, 엄마는 다 자기 탓이란다.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이 만든 건데 다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그런 플래닛이 사라질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로병사의 여정을 거친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것만 살아있는 것은 아니어서, 살아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사회도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르신들의 사회 플래닛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먼 훗날 일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인 것은 쓸쓸하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가여움과 상실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임종을 지킨다.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한다. 그런데 플래닛이 소멸되는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다른 블로그로 이전기능을 제공해줬다. 이전이 끝나면 폐쇄를 물어오는데, 실수로 '그러마'하면 그걸로 끝이다. 얼마 뒤에는 명함기능을 없앴다. 다시 친구 찾기 기능이 사라지더니, 랜덤하게 플래닛을 방문할 수 있는 기능이 사라졌다. 이제 플래닛 사람들의 마지막 광장인 플래닛 홈페이지가 오는 30일 닫힌다. 아무리 외쳐도 플래닛 마스터는 대답이 없다. 외로움을 통해 유도된 죽음이다. 아 정말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이 가여운 사람들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물론, 새집으로 이사하면 된다. 그럼 새로운 툴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면 되고, 젊은 친구들이랑 격의없이 어울리면 되고, 젊은 이들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컨텐츠를 생산하면 된다. 그래서 누구도 미안해하지 않고,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으며, 누구도 관심 없는거겠지.
다음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수익 없는 사업을 유지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또 앞선 단락에서 유도된 죽음이라고 일갈한 일련의 진공작전도,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사용자의 충격을 최소화 하기 위한 나름의 휴머니즘이 아니었겠는가? 지금까지 플래닛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다음의 노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강행한다면 응당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포털은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이 여느기업과 구분되는 것은 이 회사들이 생명과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자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억의 합집합이고, 관계의 교집합이다. 플래닛이라는 자아는 포스트로 기억하고, 댓글로 소통하는 온라인의 자아이다. 그리고 자아가 있다면 그곳은 이미 세계다. 생명과 세계를 다루는 직업인들에게는 책임이 따른다. 이것은 본의와 무관하다. 생물학적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사회적 생명을 다루는 법률가들에게 엄격한 자격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의 자아와 그 자아가 살아가는 사이버 세계를 관장하는 기업은 비장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런 책임을 하나 둘 내려놓는 것이 지금은 편리 할 것이다. 하지만, 배임이 누적되면 누구도 그 회사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책임이 없는 사회적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 외로운 행성을 끌어안을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다음은 따뜻한 회사가 아닌가?
2009/06/22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