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나'로 사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나'를 규정하는 것은 후천적인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자아로 부르고, 후자를 자의식이라고 내 맘대로 부른다. 자아는 날 때부터 주어지는 빌트인(built in)이다. 내 안에서 나의 외계를 관찰하고 인식한다. 반대로, 자의식은 후천적으로 득템하는 에드온(add on)으로 추정된다. 자의식은 자아와 다르게 제조된다. 이것은 자아를 복제하고 마치 인공위성처럼 외계로 쏘아 올려진다. 궤도에 진입한 자의식은 자아를 행성으로 삼고 그 주위를 뱅뱅 돌면서 자아를 관찰한다. 외계에 대한 관찰자인 자아와 자아에 대한 외계의 관찰자인 자의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 자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것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자의식을 생산하는 메이커는 자기혐오고, 이것은 대체로 사춘기의 시대적 우울을 자원으로 한다. 사춘기의 극심한 고통은 살기 위해서 자아를 복제하는데, 복제된 자아는 일단 고통을 분산시킨다. 그 메커니즘의 핵심이 객관화다. 자의식은 주관 속에 갇혀있던 자신을 객관화한다. 객관화는 자기를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타인인 양 무심하게 바라보면,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 혐오의 역사
2009/08/14 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