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다. 남들 다 간다는 해외도 딱 한번 그것도 일 때문에 이웃나라에 다녀온 것이 전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여행을 좋아하면서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으면서 딱히 싫어 하지도 않는다. 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에 나란 놈은 언제나 그렇듯이 놓여있었다. 그럼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여행에 대한 애매한 기호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를 소개하고 있다. 미묘함을 전달하는 것이 귀찮고 구차해서....
여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일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판에 박힌 장소를 벗어나는 것일 테고, 또 다른 시간으로 곰곰이 떠나는 것일 거다. 어떤 이는 진부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진부했던 삶을 되새기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어떤 이는 또 다른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서 여행 하고, 어떤 이는 또 다른 시간이 추억할꺼리를 만들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의하기 어려운 것일수도 있다는 것을 세상은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꼭 집구석을 떠나야 달성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얼마전에 나는 집구석으로 난입하는 모기들의 유입경로를 드디어 발견했다. 베란다의 창문으로 보일러의 연통이 난폭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그 틈새로 팔뚝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알루미늄 테이프를 사다가 꼬박꼬박 바르면서, 나란 놈은 내 집 조차도 못가본 곳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아직 발바닥에 쩍 달라붙는 장판 아래의 세계를 들쳐보지 않았고, 우리 집의 옥상에 가보지 못했고, 당연히 그 곳에서 바라 보이는 동네의 전경을 본적이 없다. 그 뿐인가? 나는 내시경을 통해서 '위장'과 '직장'을 본적은 있지만, 아직도 나의 '뇌'와 '심장'을 보지 못했다. 또 책 상위의 대자연인 이 노트북의 내장을 나는 아직 열어보지 못했고,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디렉토리가 이 하드디스크 안에는 가득하다. 한 공간을 나란히 점유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섬뜩한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현미경이 없는 나는 이 방구석의 마이크로한 세계를 탐험하지 못했다. 또 구글 어스를 열면 그 토록 가고 싶은 캐냐를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관조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캐냐에 가게 된다면 나는 하늘을 볼 것이다. 그리고 구글어스를 통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또 다른 시간의 '나'를 올려다 보며 가볍게 인사할 것이다. 2009/08/25 0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