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요 며칠 한국성인의 과반이 경험한다는 진부한 질병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있었다. 한 십 년 전쯤 나는 이 질병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갔고 그는 병이 덜 성숙했다며 기다리라고 그랬다. 이제 추수의 계절이 온 것이다. 의사의 차가운 메스는 거침없이
환부로 진격했고 최첨단의 아우라를 지닌 레이저는 어울리지 않게 돼지껍데기 굽는 냄새를 폴폴 풍겼다. 환부의 세포들은 마취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의 세포들은 고통에 덜덜 떨어야 했다.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온몸의 세포들은 미디어인
뇌가 보도하는 전황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 나의 인격은 철저히 부정되고 있었고 동시에 살아있음을 이렇게
절실하게 느끼다니 생명이란 고통을 통해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참 고약한 녀석 아닌가? 불과 60년 전에 이 땅위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지닌 전쟁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불구가 됐고 그들이 사랑했고,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이 땅 위에
남겨졌다. 또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가쁜 호흡을 견디며 죽음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표정하게 지나쳐간다. 세상은 소리없는 고통의 결정체 2010/01/16 15: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