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적 존재를 믿고 좋아하는 것을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내가 멀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이일은 나와 맞지 않아...',
'나는 열정이 없어...'
미안하지만 운명적 존재같은 것은 없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방황할 시간에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운명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고흐의 그림이 그렇다. 그는 잘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좋아한 것 같지 않다. 그는 살아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을 팔았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헐값에. 동생 태오의 불가사이한 정신적, 물질적 지원에 의지해 말 그대로 연명했던 것이다. 그의 그림에 대한 찬사가 어느 비평가로부터 발표되었을 땐 이미 스스로의 광기에 갇혀 세상과의 단절로 치닫고 있은 후였다. 이런한 찬사는 아무런 위안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처절히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고흐에게 있어 그림이란 마치 초코릿과 홈쇼핑 그리고 마라톤처럼 중독성을 내제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고흐처럼 사는게 힘들다. 극단적인 스트레스 아래에서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순도 높은 카카오를 찾고 , 어떤 이는 지름신을 찾아간다. 또 어떤이는 마라톤을 완주한다. 내밀하게 분비되는 마약성분을 탐닉하기 위해 그 들은 오늘도 달린다.
고흐는 다多작으로 유명하다. 18개월동안 200점의 그림을 그렸으니 2일에 한점 꼴로 그림을 그려치운 것이다. 동양화와 다르게 유화를 그리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물감이 마르고, 그 위에 덧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그대로이다. 미친듯이 그린 것이다. 그는 정말 심하게 그림에 중독된 것이다. 고흐에게 있어 그림은 어떠한 종류의 쾌락이었을까?
얼마전 싸이월드에 올라온 글중에 멋진 반고흐...영상이라는게 있었나보다. 멋진이라는 표현에 대해 격노한 나머지 과격한 표현을 쏟아낸 포스트를 보았다. 물론 고흐의 그림을 보고 '멋진'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다. 작품은 작가의 인생과는 무관하게 평가 받아야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사용한 분이 고흐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다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못생기고, 고지식하고, 정신창난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나에게 그의 그림은 멋지기보단 처절하게 다가온다. 처절한 만큼 연민이 느껴진다. 아래의 그림은 고흐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그린 3점의 대작 중 2개이다.


요즘 집에 들어가면 고흐의 화보집과 그에 대한 평론을 뒤지다 잠이 들곤한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고흐의 모작을 구입할까 했는데 가격이 30만원이 훌쩍 넘더라. 당근 그런 돈이 나에게는 없다. 해서 8000원짜리 그림책을 구입했는데, 자금을 조성해 전집을 구입할까한다.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일단 이 곳을 자주 들락거리는 수 밖에.....
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