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 냉정과 열정사이
생각 | 2007/04/03 19:54

나의 맨토중 한사람인 태호형의 블로그에서 언급된 영화. 원래 그의  블로그에서는 수면의 과학이라는 영화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수면의 과학을 보게된 동기가 이터널 선샤인에 꼳혀서라더라. 나도 그 감동의 대오를 따라가기 위해 이 영화부터 시작했다.

영화의 영상은 투박하다. 극도로 절재된 특수효과와 파격적 이야기 전개를 고려할 때, 소탈한 영상은 기대를 배제하고 허를 찌르기 위한 치밀한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웃긴 제목너머에 잔혹한 학살장면을 숨겨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개발자가 발로 디자인 한 것같은 텍스트 필드 너머에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구겨놓은 구글 같다고 할까? 한국 영화가 이제야 세련된 영상을 그려낼 수 있다며 안도하는 순간, 저들은 세련됨을 한계로 규정하고 새로운 정점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영화의 시작은 따분한 짐케리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출근을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그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이끌려 어느 해변가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는데, 그 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서로에 대한 협오밖에 남아있지 않은 두연인의 열정을 추적하면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동시에 놀라운 방법으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인간의 욕망에는 짧지만 강렬한 것과 길지만 은은한 것이 있다. 욕망의 한 갈래인 사랑은 어디에 속할까? 일반적으로 사랑은 매우 강렬하며 그 주요 동력은 성욕이다. 처음엔 성적인 매력이 서로의 성욕을  조심스럽게 자극하기 시작한다. 이 것이 증폭의 과정을 거쳐 임계치까지 가면 열정의 상태에 도달하는데, 이 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그 절정의 순간에서 이성은 올스톱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문제는 이 열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상태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을 지속하기 어렵다. 서서히 냉각되는 것은 열정의 운명일까? 열정이 물러간 빈자리에는 무관심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무관심은 혐오가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무관심을 사랑의 가장 큰 위기로 간주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게임이다. 요이땅하는 순간부터 타이머는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동안 열정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찾지 못한다면 이 게임에서 지고 말 것이다. 시간이 없다!

종종 건너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지막한 음성에 잠이 깨곤한다. 시간은 새벽 2시. 당신들의 대화는 계속되고,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당신들도 젊었을 땐 사랑이라는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그 때의 열정은 지금도 펄떡거리며 살아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꺼다. 두분이 평생을 부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열정이 식기전에 이 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의 대체재는 무엇일까?

냉정이 아닐까? 사랑이 열정이라면 우정은 냉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에는 성욕이 동기로 작용하지만, 우정은 필요라는 동기가 작용한다. 물론 여기서의 필요는 촌스럽게 세속적인 이익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고리타분하게 이익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우정은 필요로 시작하지만, 필요를 뛰어넘으면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나의 친구들을 둘러보면 하나 같이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give & take가 우정이라면 사무적인 관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필요'와 함께 우정을 지탱하는 튼튼한 뼈대는 '상호이해'이다. 나와 그들은 여전히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혈육이나, 연인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도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은가? 서로에 대한 차이는 필요를 만들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는 필요를 극복해준다. 사랑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뜨겁지 않기 때문에 항상성을 유지 하는 것이다.

우정과 사랑 중에 무엇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정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냉정이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랑은 냉정과 열정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사랑은 우정보다 난이도가 휠씬 높은 게임인 것이다. 진정한 친구가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랑에 성공하는 것은 이것보다 휠씬 어려운 일이다.

PS1. 입이 간질거려서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자면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공각기동대에 전뇌를 해킹당해 자신이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불쌍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서 소령이 이런 말을한다."자기가 자기인 것은 기억 때문이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이다.

PS2. 물론 성욕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동된다. 이 것이 단지 '야한 것'만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포르노와 매춘에 불과하다.

2007/04/03 19:54 2007/04/0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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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K . r e.m. Li .n 2007/05/24 15:24 x
제목 :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국가/ 미국감독/ 미셸 공드리각본/ 찰리 카우프만배우/ 짐 캐리, 캐이트 윈슬렛관람일/ 2005. 11. 13Star Rating 영화를 보고, 다시 사랑과 기억에 대해 생각한다사랑은 기억 위에 피는 꽃인가‘기억..
shumahe 2007/04/05 00:51 L R X
이것도 본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못보고 있네요... 언제 날잡아서 짐케리 특집으로 이터널 선샤인 이랑 23이랑해서 감상해야겠네요^^ㅎ
흠..최근 11분이란 소설을 읽고 성욕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egoing 2007/04/05 09:55 L X
군대에서 한참 고생하고 있을 때 지하벙커에 혼자 앉아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각선 45도 방향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누군가는 신일 수도 있고, 초자아(super ego) 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의 어느 날 어려웠던 지금을 추억하고 있는 좀 더 늙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우 관념적인 상상이지만 이 것을 영화화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하고, 놀랍기도 하고. 아무튼 꼭 보세요 :)
rainystar 2007/04/30 18:25 L R X
요새 느끼는 건데...
제 심장이 드뎌 푸석푸석해진다는 확실한 심증들이..ㅎㅎ (이경우는 물증이 없어도 되겠군요...제 맘이니까)
루나모스님의 감성어린 글이나 태경님의 요런 글들이 당최 집중불가입니다.
예전에 신경숙 소설을 집어들었을 때 3장을 못넘길 때부터 느끼게 된 증상인 것 같은데.
확실히 삶이 무미건조해지는 건 아닐까하는 쓸데 없는 걱정이 드네요..ㅋㅋ
egoing 2007/05/01 16:35 L X
이런 글의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쑥스러워진다는 것.
도일하고 오랫동안 블로그를 방치했더니 오랫동안 메인에 걸려있었내요.
영돈님이 물려주신 방사진을 일단 탑으로... ㅋㅋㅋ
域名注册 2007/06/06 20:14 L R X
역시 천주교 신자시라..^^
unsung cat 2007/07/22 20:52 L R X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egoing 2007/07/22 22:23 L X
? 잘 못 들었습니다? 쩔쩔..
mine 2007/12/06 14:36 L R X
저는 친구랑 술 한잔 마시고 이 영화를 봤었거든요. 뇌를 살짝 흐트러뜨리고 봐서인지 영화가 구구절절 와닿았어요.
집과 회사 사이의 길을 자유롭게 오가듯 냉정과 열정사이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마음고생 할 일은 없을텐데...근데 그럼 또 사는 재미가 없다고 투덜되겠죠
egoing 2007/12/06 23:13 L X
저는 사실, 열정을 사랑, 냉정을 우정으로 표현한건 데, 뜨겁기만하거나, 차갑기만(우정을 냉정에 비유한 것이 다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금 들기는 하는군요)한다면 참 사는게 재미없을 것 같습니다. 슬기롭고, 건전하게? 서로 노력하면서 평생 탐구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안태경 2008/08/30 08:59 L R X
이 이터널 선샤인을 몇번이나 보고 또 보던게 기억이 납니다. 영상미, OST, 그리고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정말 그 만의 매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뭔가, 영상미라든가 OST가 특출나지 않은 영화라서 오히려 담백하게 우리삶에 대입해 볼수 있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egoing 2008/08/30 09:56 L X
예 정말 경이적인 로멘스죠. 그런데, 저랑 이름이 같으세요 ㅎㅎ 저는 성이 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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