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5시에 강퇴당하는 것이다.
취지는 가족과 좋은 시간 보내라는 것이지만,
나의 가족은 지방에 있고,
여친도 없다.
나를 맞아주는 것은
회사정문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는 촉촉한 우수(melancholy).
저리가 제발!
녀석을 따돌리는 방법은 역시 연대 밖에 없는 걸까?
그래! 연대는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이 하는거지.
시대적 우울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화려한 휴가를 보러간다.
우리의 슬로건은 머리는 식히고, 가슴은 뜨겁게 데우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화려한 휴가만큼 딱 들어맞는 영화가 있을까?
우수는 저만큼 뒤에서 나를 따라온다.
딱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 수 없다.
화.려.한.휴.가
군부에 감수성이 풍부한 카피라이터가 있었나보군.
작전면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제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로테스크함을 더 강화해주니까.
그날의 광주는 참으로 그로테스트 한 공간이었겠지.
군인이 제 나라 국민을 학살하고,
제 나라 군인이 장악한 애국가를 국민은 부르고
시대적 그로테스크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모를 일이다.
불과 30년전 일인데,
모든 것이 치유된 것처럼 보인다.
군인은 아직도 살아있고,
살아있던 자들은 망자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원한속에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니.
전두환 개새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껴야 하는건지,
학살자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서 좌절을 맛봐야하는건지.
그날 광주의 괴기스런 그로테스크함은
시공을 팽창해 강남역까지 침입해온다.
계엄군처럼.
영화가 끝났다.
우리는 아무말이 없다.
이런 영화의 특징이다.
서로의 시선을 밀어내는 민망한 인장력이랄까?
물론 이런 종류의 침묵은 오래가지 못한다.
십중팔구 알콜을 찾기 마련이고,
알콜이 들어가면,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과격한 생각들이 검열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다.
다양한 스팩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군을 받아줄 그림자는 없었다.
그의 죽음은 그에게 축복이고,
그의 삶은 우리에게 절망이고.
시끄럽다.
머릿속이 시끄럽고, 장내가 시끄럽다.
아시안컵 4강전이란다.
' 축구는 4년에 한번 보는거 아닌가?'
우리의 광주와 저들의 자카르타가 오버랩된다.
나는 속으로 이라크를 응원한다.
아니 이라크의 승리를 넘어 그들의 우승을 기도한다.
저들의 우승이 이라크의 불쌍한 민초들에게
한줄기 단비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 귀소본능이 나를 일으켜세운다.
동지들을 보내고 다시
혼자다.
강남대로를 따라 교보타워를 지나서 신호등을 기다린다.
젠장, 지하철 공사는 언제 끝나는거야?
애꿋은 지하철에 시비도 걸어본다.
우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어폰을 건넨다.
우리는 아무말도 없이 걷는다.
귓전에서 Here I stand for you가 흘러나온다.
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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