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태도가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본질이 문제라고 합니다.
태도와 본질이 다투고 있는 걸까요?
아니예요.
이 둘은 처음부터 싸우지 않았어요.
싸우고 있는 것은 부끄럽게도 우리들 뿐이예요.
물론 그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예요.
맘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 일갈해버리면 속이 후련하겠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식으로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겠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더욱 멀어질거예요.
이러다가는 안드로메다까지 갈지도 몰라요.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과격한 언어와 행동으로 피아를 식별한 후
양쪽의 증오를 부추겨 원 없이 싸우는 거예요.
어느 한 쪽은 굴복할 것이고 다른 한쪽은 군림하겠죠.
다툼에서 생긴 상처는 분노를 시켜서
굴종과 죽음 중 택일하라며 윽박지를거예요.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잖아요?
당신이 무릎 꿇어야 할지 몰라요.
이기더라도 상처 없이는 안될거예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요.
친절한 얼굴로 대화를 시작하는 거예요.
상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거예요.
대화라는 튼튼한 주춧돌 위에
다양성이라는 기둥을 세우고
화해라는 대들보를 업히면
합의라는 처마를 올릴 수 있을꺼예요.
우리는 이 보편성이라는 집에서
지긋 지긋한 이상기후를 피할 수 있어요.
시원한 성취를 쪼개먹으면서,
진보라는 청사진을 함께 그리며
더 좋은 집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나겠죠.
우리는 다른 생각은 인정해도,
무례함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솔직한 존재예요.
그러니 이성은 감성에게 예를 갖추세요.
아무리 이성이 똑똑해도
감성은 당신의 부모님이잖아요?
그러니 이성이 참으세요.
감성은 못이기는 척 넘어가구요.
가족은 그렇게 사는 거예요.
악동이 되지마세요.
냉소는 상처받지 않기 위한 도망이라는 것을 알아야해요.
분노는 상처위에 간신히 앉은 따그랭이를 또 떼어내는 어리석음이고요.
상처받기 싫은가요?
그럴려면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어요.
탯줄은 끊겼고 문은 이미 닫혔는데 어디로 가려고 하나요?
멘토가 되세요.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세요.
그 상처위에서 피어나는 새살에서 행복이 열릴꺼예요.
우리는 이기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예요.
행복은 누구에게도 양도될 수 없는 모두의 권리라는 것을 잊지마세요.
그러니 대화하세요.
그래도 대화하세요.
그렇지만 대화하세요.
그럴수록 대화하세요.
관련글 :
+ 사물과의 대화
+ 슈바이처와 마더 테레사에게도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