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전'을 다녀왔는데 제목과는 다르게 그의 그림이 단 3점 밖에 없어서 적잖이 실망했었더랬다. 그 제목에서 느껴지는 마케팅적인 영악함을 느끼며 그의 그림 앞에 처음으로 섰는 데, 괴기스럽게 이글거리는 무엇인가가 격렬하게 산화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60점이나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물론, 그의 그림이 한점이라고 해도 나는 60점과 똑같은 시간을 기꺼이 투자했을 것이다.
나는 고흐를 참 좋아한다. 이런 취향은 때로는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고흐는 이 시대에 블록버스터 흥행코드이면서 동시에 초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고흐보다는 좀 더 희귀한 예술가들을 좋아해보려 했지만, 역시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우매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더라. 돌고 돌아,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의 한명으로 그를 꼽는 것을 이제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 놈의 유명세 때문에 역차별 당하기에 그는 너무나 불쌍한 인생을 살기도 했고....
미술에는 구상과 비구상이 있다고 하더라. 과거에는 사물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구상을 좋아했고, 요즘은 감성을 자유롭게 발산하는 비구상에게 마음이 끌린다. 여기서의 비구상이란 피카소나, 칸덴스키와 같은 이들의 극단적인 추상이 아니라, 딱 고흐까지의 비구상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미술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어떤 카테고리로 구분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고흐를 전후로한 지점의 그림들에게서 특별한 애착을 느낀다.
그것은 그의 그림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심신이 지쳐서 괴로워하면서도, 그로인해 예민한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불굴의 인간성이 찾아낸 어떤 미지의 시선.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가 대신 탐색한 그 모진 길을 통해, 어렴풋이 세상의 또 다른 단면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게 감사한 일이지.
그는 소박한 농촌의 일상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농부들의 노동을 가장 아름답고 정직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천대받던 농부들 속에 묻혀, 그들의 진짜 모습을 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농부들보다 훨씬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의 소망은 단지, 동생 태오에게 신세지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1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삶의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을 추구할 소박한 경제적인 자유면 족한 것이었다. 소박한 삶을 찬양했던 그의 그림이, 이제는 1000억이 넘는 값어치를 가지면서, 소박한 삶과는 상관없고, 그런 삶을 혐오하기까지 하는 귀족들을 삶을 보다 소박하지 않게하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번 전시의 그림들이 1조가 넘고, 그림 한점이 1천억이 넘는 보험을 들었다고 호들갑들이다. 그런 호들갑 앞에서 도도한척 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그런 기사류를 매우 좋아할 뿐더러, 그런 속물근성은 내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으니까. 다만, 그의 명성이 만들어내는 최면이 더 이상 그를 감상하는 데 방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곳에서 이 그림을 구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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