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은 그것을 끊임없이 들이키게 하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아마 그 힘은 달달한 맛의 끝에 남는 쌀뜨물 고유의 공허함 때문일께다. 공허함을 가시기 위해 달달한 맛이 필요한 것이겠지.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이런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영구기관이라도 발명한 것처럼 소비에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공허함이라는 놈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심장은 공허함과 쾌락의 기압차이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뜀박질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라면은 아침햇살과 대척점에 있는 욕망을 대표한다. 매운맛에 중독성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중독성의 핵심은, 매운맛을 잊고자 매운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고통으로 해소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아침햇살과는 또 다른 욕망이다. 아침햇살이 공허함이라는 고통을 회피하고자 달달함이라는 쾌락을 필요로 하지만, 신라면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고통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디즘적, 마조히즘적 욕망으로 이루어진 영구기관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건 꼭 나쁘게 볼 것은 아니라서, 비극적인 예술의 장르는 다 신라면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신라면은 이러한 욕망을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꽤나 글로벌한 욕망인 듯.
(좀 억지스런 비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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