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공부와 추궁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기억력이다.
그 반대편에서 외면당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는데
바로, 망각하는 능력이다.
잊어버리는 것을 능력이 아닌,
기억력의 한계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에서 망각은
건망증이나, 치매와 같은 우울한 언어를 육체로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부실한 기억력을 참 많이 저주했었다.
아. 기억력이 조금만 좋았더라면!
하는 어리석은 회한은 지금도 솔직히 하는 중이고...
하지만,
이제는 망각을 하나의 능력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부끄러운 짓거리를 많이 해대고 다니는 내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 압도적인 기억의 중량감에
한 달도 견디지 못하고 무서운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화장실에서.
만성 과민성대장염을 겪는 나에게
화장실이란
인생의 4.1퍼센트와
사유의 40퍼센트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이른 아침,
비몽사몽 간에 쇄도한 엉덩이와
얼음장 같은 좌변기의 냉정한 접촉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그 전날의 기억을 하나하나 호출한다.
이내, 불려나온 기억들은
괄약근의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대장이 밀어내는 압력에 따라
혐오와 후회로 재구성되면서 마침내 배설된다.
섭취에서 배설에 이르는 여정이
대체로 1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억력이 조금만 더 좋았거나,
망각력이 조금만 더 구렸다면,
화장실은 건전한 배변의 장이 아닌,
참혹한 고문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변비 환자의 그것처럼.
절기마다 찾아오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 있다.
사춘기 때의 신체적인 변화에서
병영에서 마주한 계급적 변화와
월급통장 속에 프린트된 경제적 변화
그리고 서른을 목전 둔 지금
아직은 만족스럽게 '이것이 머다'라고 정의하지 못하는 이 모호한 변화까지.....
천재적인 망각력이 나에게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파멸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