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존재냐? 소유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07년,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봤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참혹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한층 복잡하게 혐오하게 되었고, 혐오는 글쓰기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는 희망도 동시에 있었다. 치료의 시작은 병을 인정하는 것이다. 병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치료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동시에 계승한 이 위대한 심리학자는, 내 안에서 옹알거리고 있던 욕구들의 불만을 해방시켜주었다. 나의 롤모델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될 2007년과 에리히 프롬!
블로깅
군에서, 소묘를 배웠었다. 청주 집에 보관 중인 스케치북에는 그때의 치열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대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단 한편의 그림도 제대로 그려본 게 없다니. 마음 굳게 먹고, 연필을 들었지만, 번번이 실패. 스케치북의 표면은, 시베리아의 설원처럼 차갑고, 거대해 보였다. 그 장대함 앞에서 톰보우 연필은 얼마나 작고 초라하던지.
열정으로부터 도망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열정의 크기가 클수록,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묘에 비해, 글쓰기는 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짧은 대학시절을 마지막으로, 나의 글쓰기는 정지 되어있었다. 그리고 07년 블로깅을 시작했다. 여전히 글쓰기는, 쓰고 싶다는 미지근한 욕구와, 미친 듯이 그만두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엉망진창으로 얽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팅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표현하기 위해 생각한다. 표현은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다. 이 욕망을 구체화하기 위해 인간은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이 욕망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동차, 집, 돈, 명성과 같이 세속적인 것에서부터, 지식, 신앙, 자식과 같은 영적인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나에게 글쓰기는 이러한 표현의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이 아닐까?
글쓰기의 또 다른 측면은, 이 말에 함축되어 있다. ‘말하고 보니’ ‘말하고 보니’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생각이란 언어라는 레고블록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블록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레이아웃이 탄생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스스로 배움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효용이 아닐까? 앎은 축적하는 것보다,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놈
룸메이트이자, 베스트 프랜드인 놈이 일본 유학을 결행했다. 놈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놈의 부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랜시간에 걸쳐 장문의 포스팅을 작성했다. 문제는, 글 속에 실명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실명은 내용의 전개상 불가피했다. 은둔형이며, 안빈낙도를 즐기는 놈은 실명을 밝힐 경우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단 한 줄도 편집할 수 없다며 작가정신으로 맞섰다. 지루하고, 시덥지 않은 공방이 이어졌다. 급기야, 놈은 공개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포스트는 비공개상태로 미아가 되었다. 알토란 같은 내 포스트. 불쌍해서 오야꼬? 아쉬운 마음에 한 줄만 이곳에 옮긴다.
“놈과 나는 성욕을 제외한 대부분의 욕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럼 지면을 빌려서, 놈에게 한마디. 놈아,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해. 니가 내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 달았던 날 말이야. 얼마나 반갑던지. 비공개 댓글을 보고, 너답다는 생각을 했었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았다. 전대미문, 유일무이한 너의 비공개 악플에 나는 상심을 차라리 즐겼단다. 놈아, 또 그러면 알지? 일본에 가면, 스미마생 같은 것 좀 잔뜩 배워와 알았지?
나는 조만간 너의 부재가 불러올 사회적 기억상실을 준비해야겠다. 이런 거 사별한 노부부들이 경험하는 거라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