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서강대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밝힌 학생이 100분 토론에 출연해 국민적 집단 이지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학생의 발언이 다수 의견과 다르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논리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한 인격을 공개적으로 매장해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이 경험하고 있을 형벌은, 광우병의 협상당사자들이 경험하고 있을 고통을 압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의 책임자들은 거대한 관료주의의 클러스터링 아래에서 십시일반으로 책임을 분산하고 있을 터이지만, 그 학생은 온몸으로 국민적인 모욕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학생은 죄를 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생각을 용기 있게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서 같이 싸우겠다. (볼테르)" 민주주의는 정부와 국민의 관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을 넘어서, 다른 생각과 다른 생각 사이에도 적용되는 범용적인 가치의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수단이 공포를 통한 다른 생각의 원천봉쇄라면 이 정권의 필살기와 뭐가 다를까요?
또 하나의 심란한 움직임이 있는데요. 주민소환을 통해 오세훈 시장을 탄핵하겠다는 것 말입니다. 불량한 정책에 대한 수단으로써 리콜을 하자는 것에 어떤 이견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광우병의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구조입니다. 이 논리구조는 너무나 정치공학적이라서, 이것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사연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연좌제입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연좌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저는 불편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는 공학이 아니고 상식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했으니, 오세훈 시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아닙니다.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을 들고 종로 한 바퀴 도는 것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촛불을 든 것이 이제 한 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네 한 바퀴만 돈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고,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임명한 권력의 실체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보수의 수준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죠. 정권 하나를 작살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래알처럼 흩어진 '경험'을 어떻게 모래성처럼 거대한 '상식'으로 승화시키느냐 입니다. 그러려면 곰곰이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성급한 혁명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도 (분에 넘치는 수사지만 보는 처지에 따라서는) 혁명은 혁명이죠. 그런데 그 혁명의 결과가 3개월 만에 이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왠지 낮설지 않습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말입니다. 그것은 성급한 혁명의 비극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시스템만 바꾼다고 혁명이 완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의 몰락이 보수에 준 치명상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진보에 준 치명상의 대자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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