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속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
40대로 보이는 의사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까칠한 여자였다.
나의 귓속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귓구멍이 어쩜 이렇게 작지?"라며 모호한 감탄을 연사했다.
사실 그 병원은 3년 전부터 불편할 때마다 찾는 단골의원이었다.
문제는 이 의사가 볼 때마다 귓구멍이 작다며 조롱과 감탄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참다 못해 강력하게 항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접수창구에서 간호사에게 얼마냐고 묻는다.
5천원이라고 한다. 나는 신용카드를 꺼냈다.
혹시,
득의양양한 복수를 눈치 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replay를 해드리면
5천원이라고 한다. 나는 신용카드를 꺼냈다.
다음 날,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다시 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에서 의사의 까칠함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앞서 치료를 받고 있던 남자는 코를 심하게 풀어서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나 보더라.
쭈뻣거리던 남자는 상투적인 질문을 한다.
"흔한 경우가 아닌가 보죠?" 날 선 목소리가 돌아온다.
"흔치 않죠. 그렇게 코를 심하게 푸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나) "역시 까칠해"
다음 남자는 코의 점막에 문제가 있는 비염환자였다.
남자는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었는데.
수술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물었다.
의사는 역시 카칠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했다.
환자와의 상담은 1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환자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여유도 부리고 있었다.
아주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는 의사치고는 꽤나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 2,30분씩 기다려서
불과 1~2분 알현하고 끝나는 경우가 횡횡한 병실 트랜드에
까칠한 여의사는 의외의 인내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환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우유부담함과 딜레마 속에 가둬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합리화시키기 마련이다)
차례가 왔다.
나는 부러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까칠한 의사가 뜻 밖의 미소를 작렬하며 귓속을 요리저리 후벼준다.
좀 아프기는 했지만, 참으로 시원했다.
우울한 귓구멍에서부터 묘한 울림 같은 것이 엄습한다.
아 경망스런 감정의 변덕이여~
"얼마예요?"
"2100원이요"
나는 주머니 속을 삿삿히 뒤져서 2100원을 만들어 현금을 건넨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잘해주던 사람이 한번 잘 못하면
위선자다, 겉과 속이 다르다며 온갓 저주를 퍼부으면서
까칠하던 인사가 한번 친절을 배푸면,
감동 감화받으며 사실은 좋은 사람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감정에도 일종의 밑천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께다.
밑천이 다 떨어지면 꺼낼 카드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친절하기만 한 사람은 친절함에 대한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는 더 이상 불친절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삶은 긴장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친절한 사람이라고 밑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절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엘레강스한 수단은 '정색'이다.
친절함 속의 정색은 강력한 의사표현이 된다.
문제는
까칠함 속의 친절이 상대에게 감동을 일으키지만,
친절함 속의 까칠함은 상대에게 배신감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여러모로, 친절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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