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히딩크는 선수 시절 2군이었다. 지금 그는 최고의 감독이 되었다. 유치원교사와 대학교수는 둘 다 가르치는 직업인이다. 그러나 둘은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한다. 선수와 선생 뭐가 다를까?
선수는 천부적인 재능이면 족하다. 그는 그가 잘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이유도, 재주도 없다. 그냥 잘하는 것이다. 뛰어난 직관 덕에 이들은 논리적일 필요가 없다. 논리는 여러가지 용도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부족한 직관을 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직관이 좋은 사람은 입이 크다. 이들은 커다란 맘모스 빵도 한입에 구겨넣을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다. 반면에 직관이 부족한 사람은 입이 작다. 이들이 큰 빵을 먹기 위해서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작게 쪼갠 후에 하나 하나 입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이내 입속으로 들어온 빵조각은 다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모로 가나 서울로 가면 되기 때문에 직관이나 논리나 도달하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논리는 분해와 조립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직관에 비해서 느리다. 시간을 절약한 직관은 남는 시간에 다른 빵을 먹어치울 수도 있다. 그래서 직관이 뛰어난 사람은 빠른 이해와 판단을 요구하는 일에 적합하다. 그럼 논리는 열등한 것일까? 아니다.
논리는 훈련이다.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에게 봉사하던 논리는, 타인을 가르치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비유하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그에게 빵을 먹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직관은 먹기 좋은 크기의 빵을 만들지 못한다.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고, 빵을 왜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직관이 큰 도움이 되지만, 가르치는 것은 논리가 중심이다.
직관과 논리는 사고의 중요한 두 축이다. 문제는 둘이 별로 친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관이 뛰어나면 논리가 필요 없고, 논리가 뛰어난 경우는 대체로 직관의 결핍 때문이다. 전자는 연구능력은 출중하나, 강의가 엉망인 교수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명문대 나온 고문관이 전형적이다. 직관과 논리의 균형은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늦은 사람을 위해 적성이라는 것도 있다.
+ 직관과 논리 - 키보드와 펜, 윈도우와 리눅스
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