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권력
실무권력 구글 웨이브가 개발을 중단했다. 사실 웨이브가 이메일을 대체할 것이라는 시중의 예측에는 '웃기는 소리'라고 냉소했지만, 웨이브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의외다. 웨이브는 구글에게 최초라고 할만한 유일한 제품이었다. 구글은 웨이브를 통해서 커뮤니케이션과 아카이빙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을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이면에서 '최초'에 대한 구글의 열등감을 본다. 이를테면 검색엔진에서 구글은 최고와 최다지만 최초는 아니었다. 구글의 쥐메일 역시 최고지만 최초는 아니었다. 구글 칼린더는 데스크탑 에플리케이션을 웹으로 포팅한 것이고, youtube와 Docs는 M&A를 통해서 구매한 것이었다. 버즈는 새로울게 없는 SNS 서비스다. 구글의 제품들은 최고와 최다라는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지고 있지만, 최초라고 할만한게 한개도 없는 셈이다. 있다고 해도 웨이브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남의 일이니까 편하게) 넘겨 짚어보면 그 중심에 권력의 문제가 있다.

미국의 혁신적인 기업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업을 꼽으라면 구글과 애플을 든다. 지금까지 기업은 경영권력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런데 이 두회사에서는 경영권력을 넘어선 실무권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구글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엔지니어링 권력이다. 대부분의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구성원들의 특성상 긱하고, 건조하기 마련이다. 대체로 엔지니어가 아닌 경영진들은 이러한 문화를 오덕하고, 괴상하면서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구글은 그러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의 성향을 대놓고 회사의 아이덴티화 시켰다. 이렇게 창조된 엔지니어링 권력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고, 이 문화는 혁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있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을 (같은 엔지니어인 내가 봐도 어이없을 정도로) 그냥 해버린다. 이 자신감이 구글의 제품을 최고와 최다로 만들었다.

그런데 권력이란 대체로 공유되지 않고 독점된다. 엔지니어들이 독점한 권력은 다른 직군을 주눅들게 한다. 디자이너를 놓고 보자. 이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가벼움, 단순함, 명료함이라는 엔지니어링적인 미학 아래에서 운신이 철저히 통제되고 억압되고 있다. 웨이브는 그야말로 엔지니어의 로망을 모두 담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웹에서 그게 돼?라고 할만한 것들을 다 구현해버렸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얼마나 많은 테크놀로지들이 자신감만 가지고 뛰어들었다가 끝에서는 초라해졌는가? 웨이브는 이들 불운한 선배들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있다. 엔지니어들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믿게된다. 그 역시 그 사람들 중의 한명이지만, 개발자와 사용자는 입장이 다르다. 오랜시간 고민하고, 더 오랜시간 구현하고, 다시 테스트에 테스트를 반복한 슈퍼유저인 엔지니어에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사람들은 새로운 것 속의 진부한 것에는 야유를 보내지만, 진부한 것 속의 참신함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낸다. 참신하기만 하고, 진부하기만 한 것들은 대체로 외면 당한다.

그렇다고 구글의 엔지니어링 권력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 성공요인을 실패요인으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구글에게 엔지니어링 권력은 한계가 되지만 동시에 가능성이다. 한계의 극복에만 집착하고 가능성을 폄훼하면 많은 것은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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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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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8 15:26 L R X
평소 정말 짧은 단상을 쓰시는 이고잉님이 이렇게 긴(?) 글을 쓰신 걸 보니 구글 웨이브 서비스 중단 소식에 상당히 놀라신 듯 하네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나한테 맞는 서비스는 아닌 것 같아 안 써 왔고, 또 망할 것이 뻔히 보여서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만 너무 쉽게 접는다는 생각(약속을 너무 쉽게 취소하는 것 같은)은 들었습니다)
구글은 기술(검색기술)로 성공한 기업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쪽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또 저는 '마케팅 제일주의'적 회사를 싫어해서인지 기술 중심주의인 구글 같은 회사도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쪽, 즉 디자인(그래픽이든 기획이든) 분야 같은 쪽에서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부추기는 쪽으로 회사의 스타일이 조금은 변신해도 좋을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전문가의 구글 단상이었습니다 ^^)
egoing 2010/08/08 21:28 L X
펄님 안녕하세요. 종종 길이 늘어지는데, 대체로 별볼일 없어집니다. 예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직군의 의견이 평화롭게 수렵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겠지요. 그런데 이 문제는 저 역시도 항상 고민이 됩니다. 매일 고민하고 부딛히는 문제구요.
RUKXER 2010/08/10 08:33 L R X
저도 이 소식은 좀 놀랄 만한 소식이었는데..
저희 회사는 엔지니어 힘이 좀 강했으면 좋겠어요(...)
egoing 2010/08/11 10:59 L X
그 회사는 회장님 힘이 제일 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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