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가 그 전까지의 SF 선배들과 구별되는 것은, 이것이 소프트웨어와 정보에 대한 판타지라는 점이다. 이전까지 SF의 중심테마는 주로 기계문명의 힘과 그에 대한 불안이었다. 스타워즈가 그랬고, 터미네이터가 그랬다. 매트릭스는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논리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페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그 중심에 스미스 요원이 있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네오가 아니라 스미스 요원이다. 네오야 성서적 메시아의 SF적 재탕일 뿐이다. 네오의 등장은 터무니 없지만, 스미스 요원은 '일리'있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다시 스미스 요원을 만들었다. 스미스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생명체라는 점에서 그 조부모인 인간이나, 그 부모인 기계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에게는 물리적인 육체가 없다. 그에게 육체란 소프트웨어이고, 정신은 정보이다. 이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사뭇 충격적이다. 생산자와 복제자의 차이다.
2편부터 스미스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게 된다. 네오 앞에 나타난 스미스는 자신을 무한히 복제해 네오를 물리친다. 생산과 복제는 어떤 관계일까?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생산과 복제는 동일하다. 하지만, 생산은 자본과 자원 무엇보다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복제는 이런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소프트웨어에서의 복제란 약간의 메모리 증가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특히 복제와 함께 스미스 요원의 또 다른 필살기인 감염은, 타인을 자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하다. 이것은 메모리의 추가적 점유조차 유발하지 않고, 자신을 무한 증식하는 방법이다. 이 복잡한 영화에서는 다양한 긴장이 존재하지만, 복제자에 대한 생산자의 공포야말로 영화가 뿜어내는 불안과 공포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은 단지 워쇼스키 남매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초에 세계최고의 IT 기업은 IBM이었다. 그들은 하드웨어를 만들었다. 얼마 후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MS가 등장했고, 곧 세계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다시, 구글이 등장했다. 구글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최고의 기업을 향해 행군중이다. 헤개모니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다시 정보로 이동하고 있다. 다시말해, IBM이라는 생산자는 MS라는 복제자에게, MS라는 생산자는 다시 구글이라는 복제자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있다. 매트릭스가 고도화 될수록 전무후무한 복제자가 출현할 것이다.
얼마전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직간접적으로 연류된 인사만 1만명, 거래규모로는 1조원이 넘는 거대 산업에 대한 불법성을 따진 것이다. 이것은 두개의 정부 간의 긴장을 암시하는데, 두개의 정부란 오프라인의 전통 정부와 온라인의 신흥 정부를 말한다. 두개의 지배자 간의 긴장은 이미 곧곧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 격전지가 약관이다. 약관이란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양식을 규정한다. 그렇다보니, 게이머들에게 약관은 헌법의 영향력을 상회한다. 게임업체는 계정압류를 약관에 반영해 줄 것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계정압류란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오프라인으로 치면 사형에 준하는 극형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견해가 없고, 입장이 없다. 게임산업은 육성해야겠고, 제 자식들이 게임하는 것은 지독히 싫어하면서, 정작 자신은 게임을 해본 적도 없는 관료들에게 견해를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갈등은 좀 더 구체적인 충돌로 고도화 될 것이다.
가상의 세계란 무엇일까? 이걸 논하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가상의 자아다. 자아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기억과 소통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나'란 서로 다른 삶의 문맥에 놓여진 어제와 오늘의 '나'가 기억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 '나'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서 타인의 인식 속에 살아간다. 이 두가지가 있다면 자아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깃드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채팅과 전투를 통해서 타인과 소통한다. 또 랩업과 인벤토리를 통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기억한다. 블로거는 어떤가? 이들은 포스팅의 형태로 기억되고, 댓글과 트랙백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한다. 이것은 휴대폰과 구분되는데, 휴대폰은 자아의 두가지 구성요소 중 소통의 도구는 있지만, 기억되지 않는다. 통화가 끝나면 자아가 소멸되는 것이다. 즉 가상의 자아란, 실제 자아가 철회 되었을 때도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자아가 있다면 그것이 게임이건, 웹이건 세계가 된다. 세계가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있다면 그 곳이 세계이다.
그 런데 실제의 자아가 가상의 자아로부터 철회할 수 없다면? 그곳이 바로 매트릭스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나에게 온라인이란 오프라인 보다 광대한 영토이다. 이 영토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측정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가? 특히, 게임방에서 몇날 몇일을 라면으로 연명하는 이들에게 오프라인이란 그저 집과 게임방 사이을 연결하는 귀찮은 물리적 한계에 불과하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돈도 벌고, 친구도 만들고, 세력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생노병사는 점차 가상의 세계에 종속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보상심리나, 피해의식의 발로가 아니다. 삶의 터전의 문제다. 이들은 이미 가상의 세계로 이주한 것이다. 영화 속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영화 속의 인간들은 매트릭스로부터 철수 할 수 없다. 자신이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천적 지배다. 기계는 어떤가? 그들은 매트릭스의 창조자다. 그들은 인간을 건전지로 만들기 위해서 매트릭스를 지배하지만, 실은 자신들도 매트릭스에 지배되고 있다. 2편에서 등장하는 하먼의원과 네오의 대화를 들어보자.
네오 : 이 기계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건 아니죠.
하먼 : 그래, 당연하지,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
그런데 자꾸 의문이 생긴다네. 대체 지배란 멀까?
네오 : 원하면 기계를 꺼버릴 수 있죠.
하먼 : 맞아 그렇지. 그게 지배야. 여차하면 부술 수 있지.
그런 다음엔 조명과 난방, 공기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결국 인간이나, 기계나, 스미스 요원이나 매트릭스의 세계에 종속된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와 다를까? 가상의 세계를 둘러싼 이슈 중 가장 뜨거운 것이 중독이다. 대체 중독이란 멀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중독된 것일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프라인 입장에서는 중독이지만, 온라인의 입장에서는 열정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이동, 대탈출을 이 시대는 중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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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