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나에게는 예비군 훈련보다 지루한 절기다. 가족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 범위가 가족을 넘어 친척, 사촌을 넘어 육촌까지 확장되면 명절은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무의미한 진공상태가 된다. 특히, 또래가 없는 나에게 명절이란 로빈슨 크루소의 섬과 같은 고독이다. 물론, 6촌 중에는 동갑내기가 한명있다. 모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나지만, 이 친구와는 도통 가까워지지가 않는다.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그렇다보니 좀 친해지려고 해도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훨씬 쉬운 것을 보면 '새삼스럽다'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보니, 명절이라는 공간은 고독을 넘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나의 고향은 대구고, 나의 본적은 안동김씨인데, 이 둘의 조합은 아주 강력한 보수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진보도 아니지만, 보수는 더더욱 아닌 나에게 명절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한 이유다. 이 번 명절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누구도 정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노무현 탓으로 돌리던 어르신들은 이제는 정치에 대해서 함구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명절이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님에도, 즐거움을 간주하고 있는 이 거짓된 사회적 분위기다.
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