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성형이라는 기술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능력이 삶의 수단이라면, 아름다움은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름다움이 삶의 목적이 아닌 능력이 되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데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아무나 추구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을 비난하거나, 비웃을 필요는 없다. 선천적인 아름다움과 후천적인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것은 마치 화장이나, 패션, 넓게는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건, 의사가 만들어 준 것이건 아름다움 자체가 중요하므로.
문제는 성형이 계급적인 격차를 고착화 한다는데 있다. 아시다시피, 의학은 한 인간의 계급적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부분의 의학적 장르는 계급적인 추락을 막기 위한 것인데, 예외가 바로 성형이다. 성형은 계급적인 상승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는 잘생긴 이목구비 덕분에 계급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과학과 아름다움이 손잡은 성형기술은 이러한 가능성 조차 원천봉쇄하기 시작했다. 결국 돈이 아름다움을 만들고, 그것은 다시 권력으로 수렴하여 계급적인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추악해지는 것은 바로 이 계급적인 문제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성형의 탈 의료화다. 아직까지 성형의들은 의료라는 장르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도권안에 있어야만 야매를 견재할 수 있고, 의사라는 직업 프리미엄이 아직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형의는 기본적으로 기능인이지만 무엇보다 예술인이다. 이 말은 이들 중에도 고흐나 피카소와 같은 불멸의 브랜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브랜드를 점유한 의사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예술인으로 재정의할 것이다. 이것은 탈의료를 의미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돈이다. 그들이 의료인으로 묶여있는 이상 손님은 환자, 비용은 진료비로 제한된다. 이러한 용어의 차이는 도덕적으로는 히포크라테스를 물질적으로는 정찰제라는 의무를 의미하는데, 다시말해, 의료라는 테두리에 갇혀있는 이상 이들의 수입은 브랜드나 희소성이 아닌, 노동의 양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성형이 탈의료화되면 성형시장에는 샤넬이나 페라리, 해피해킹과 같은 명품이 형성될 것이고, 명품이 배포하는 욕망은 야매로인한 짝퉁을 등장시킬 것이다. 물론, 계급적인 격차는 보다 견고해질 것이고.
패션도 문제다. 아름다움이란 패션을 통해서 신선도가 유지된다. 고할 수도 있지만 패션이란 산업의 이해와 직결된다. 해마다 의류브랜드가 패션쇼를 개최하는 것은 과거를 추한 것으로 만들어야 새로운 소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성형도 아름다움에 대한 것인 이상 예외가 아니다. 성형산업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발굴할 것이다. 동시에, 성형기술이 안정되면 성형의 패션화는 가속화할 것이고. 이것은 성형에 대한 지속적인 지출을 의미한다. 돈이 없으면 변화에서 낙오되거나, 경제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이고.
결국 성형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돈의 문제다. 아름다움의 추구를 돈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는 이상 아름다움은 추잡한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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