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ego+ing</title>
		<link>http://egoing.net/</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09 Mar 2010 01:31:22 +0900</pubDate>
		<generator>Textcube 1.7.6 : Staccato</generator>
		<item>
			<title>시청자 근성</title>
			<link>http://egoing.net/1382</link>
			<description>사람들은 무려 은메달 씩이나 딴 아사다 마오를 루저라고 비난하거나 동정한다. 또 사람들은 엘리트임에도 그 험한 진보의 길을 걸어온 노회찬이 조선일보 생일잔치에 갔다는 이유로 야유를 보낸다. 또 사람들은 자기들 보다 도덕성이 높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 연애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미디어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미디어의 소비자들을 시청자로 길들였다. 시청자란 누구인가? 브라운관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브라운관 밖에서는 안쪽 사람들을 의식 하지 않아도 되고, 안쪽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서 나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금메달을 따지 않았고, 노회찬 보다 험하게 살 용기가 없고, 연애인들에게 대중이 요구하는 삶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 나야말로 시청자 근성에 쩔어있는 브라운관 밖의 한 사람</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82</guid>
			<comments>http://egoing.net/1382#entry1382comment</comments>
			<pubDate>Mon, 08 Mar 2010 01:15:39 +0900</pubDate>
		</item>
		<item>
			<title>결혼</title>
			<link>http://egoing.net/1381</link>
			<description>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결혼을 안 할까? 이유도 나와있고, 해결책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결혼이라는 모델 자체에 대한 회의는 많지 않다. 피터 드러커가 그랬다. &#039;절차란 소수의 천재만이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를, 다수의 보통사람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039; 결혼이란 성욕의 안전한 해소와 사회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절차면서 모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모델을 기피하고 있고, 또 이 모델을 수용한 많은 기혼자들이 더 큰 불행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이 소수의 문제라면 개인적인 편차를 탓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쯤되면 결혼이라는 모델 자체가 근본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건축에서는 공법이라는 것이 있고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프래임웍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시공과 개발의 방법론을 제안하면서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또 국가적으로는 국가의 형태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모델들이 있다. 시장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국가주의... 이러한 모델들은 끊임없는 논쟁거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모델 자체에 대한 논란은 많지 않다. 지금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결혼이라는 부실한 모델을 수용해서 결혼을 하던지, 대안적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결혼을 포기하던지. 세계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세상에는 수 많은 형태의 결혼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lt;div&gt;&lt;br&gt;&lt;/div&gt;&lt;div&gt;{무엇보다, 결혼하기 싫어서, 결혼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둘 다가 맞다 ㅎㅎ)}&lt;/div&gt;</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81</guid>
			<comments>http://egoing.net/1381#entry1381comment</comments>
			<pubDate>Sun, 07 Mar 2010 20:28: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영향력과 정치력</title>
			<link>http://egoing.net/1378</link>
			<description>영향력이 행동에 돌입하기에 앞서 타인 스스로 그 의지에 동참하도록 하는 위치 에너지라면, 정치력은 행동을 통해서 타인의 의지를 
변형시키는 운동 에너지인 셈이다. 영향력으로 도사리고 있던 에너지는 그것이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순간 정치력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영향력은 행사되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고, 정치력은 그것이 성공적으로 실행 되었을 때 다시 영향력의 형태로 축적된다. 
따라서 영향력은 탐욕스럽게 축적할만한 것이지만, 정치력이란 극도로 조심해서 집행해야 하는 것인데 다른 말로는 
&#039;선(line)&#039;이라고 그런다. 이 선은 어디에나 있다. 집단 안에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 그리고 이 선은 시시각각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자신에게 허용된 선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향력과 정치력은 이 선 안에서 자유로울 때 고양되고, 이 선의 존재조차 모르면서도 정치적인 인종들은 상종을 말아야....&lt;br&gt;
</description>
			<category>영향력</category>
			<category>정치력</category>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78</guid>
			<comments>http://egoing.net/1378#entry1378comment</comments>
			<pubDate>Thu, 04 Mar 2010 10:25: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스킨</title>
			<link>http://egoing.net/1373</link>
			<description>나에게 블로깅이란 세가지 ing를 의미 하는데, 포스팅과 댓글링 그리고 스키닝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들이 인격을 구성하는 세가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포스팅이 고독이라면, 댓글링은 소통이고, 스키닝은 스타일과 닮아있다. 이 중에 고독이 내가 나로 존재하는 방식이라면 스타일은 내가 타인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 가운데에 있는 소통은 내가 남과 만나는 통로다. 그런 점에서 포스팅과 댓글링 그리고 스키닝은 블로그가 자아의 대리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어느 것 하나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틈만나면 블로그의 스킨을 가지고 꼼지락 거리는데 이 작업의 메인 컨셉트는 &#039;결핍과 과잉의 긴장&#039;이다. 블로그를 볼 때마다 여기서 무엇을 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이 스킨에 대한 평가는 &#039;심플하다&#039;가 중론이다. 동시에 내 블로그에서는 과잉도 발견할 수 있는데, 1000개의 최신글이 나열 되도록 한 사이드 바말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는 역사고, 영적으로는 주마등과 같은 것이면서, 타인을 향해서는 허세로도 기능한다. 하나의 페이지를 공유하는 이 결핍과 과잉의 긴장이 사진 한장 없이 심심한 이 블로그에 드라마틱한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폼 나겠지만, 사실 지금의 모양새에 도달하기까지 이렇게 거창한 컨셉이 배후에 있었던 것은 당근 아니다. 취향을 따라서 틈틈히 디자인을 바꿨고, 이 과정에서 일련의 패턴을 발견 했는데 거기에 결핍과 과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취향이 컨셉을 만들고, 일단 만들어진 컨셉은 취향을 지배한다.</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73</guid>
			<comments>http://egoing.net/1373#entry1373comment</comments>
			<pubDate>Fri, 26 Feb 2010 10:12: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대학</title>
			<link>http://egoing.net/1371</link>
			<description>원하지 않는 학교에 과수석으로 입학한 나는 좀 기괴한 심리상태 속에서 일학년을 보냈다. 그것은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죽박죽된 것이었는데, 물려받은 기질이 친절한지라 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 친절함은 상대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구분되기를 원했고, 실제로 사람들은 나를 정중하게 대했다. 나의 친절함과 사람들의 정중함만큼 우리는 동떨어져 있었다. 나의 일학년은 다른 학교의 일학년들과는 좀 달랐는데, 입학한 학교는 몇년째 분규중이었고, 얼마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업거부에 돌입했고, 학생회장의 결의에 따라서 자퇴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악다구니를 쓰며 구호를 외치고, 하늘에 시퍼런 멍이 생길 때까지 팔뚝질을 했다. 전경들과의 으쌰으쌰는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까지도 익숙해지는 나를 목격하곤 했다. 익숙해짐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그날은 총장집에 방문투쟁을 하는 날이었다. 전교생이 참가한 총력투쟁이었고, 전경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집주인도 없는 곳을 갔다가 돌아왔다. 강당에 집결했고, 과별로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연설이 시작 되었다. 우리 과의 차례가 오자 학우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천명이 내려다보이는 연단위에 서 있었다.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멋진 웅변을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학우들은 연단에서 내려오는 일학년을 향해 일제히 놀라운 시선을 보냈다. 아까전에 학우들이 연호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이름과는 한끗 차이 밖에 나지 않는 4학년 운동권 선배였다.</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71</guid>
			<comments>http://egoing.net/1371#entry1371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Feb 2010 13:04:3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스펙</title>
			<link>http://egoing.net/1369</link>
			<description>그그제 트위터에서 아바타의 주인공이 대중연설에 앞서서 (큰 새인)그레이트 리오놉테릭스를 잡으러 간 것을 두고 나비족의 사회도 별수 없는 &#039;스펙사회&#039;라고 했었다. 이에 대해 꽤 많은 분들이 그건 스펙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그랬다. 그렇다 그것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간주하던 것을 해낸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039;실력&#039;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역활을 병사가 아니라, 지휘관으로 확장해놓고 보면 큰 새를 타는 것은 &#039;스펙&#039;이된다. 부족을 규합하고,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은 탈 것이 아니라 리더쉽과 지혜이기 때문이다. 물론, 큰 새를 탄 자가 대추장에 오를 수 있다는 나비족의 신화가 있기 때문에 큰 새를 타는 것을 두고 &#039;스펙&#039;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 &#039;스펙&#039;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신화와 같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스펙을 존중하고, 좋은 스펙에 대한 기대를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문제는 스펙이 그 사람의 하한에 대한 참고가 아니라 상한을 결정하고, 그 기대가 너무 과해서 그것이 신화가 되는 것이다. 누가 감히 신화의 권위에 도전하겠는가? 프랜차이즈는 음식맛의 하한을 사수 하지만, 상한에 도전하는 것은 결국 주방장의 손 끝&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amp;nbsp;&amp;nbsp; &amp;nbsp;+ &lt;a href=&quot;http://egoing.net/1301&quot;  target=&quot;_blank&quot;&gt;능력&lt;/a&gt;&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lt;div&gt;&lt;br&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상한</category>
			<category>스펙</category>
			<category>아바타</category>
			<category>하한</category>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69</guid>
			<comments>http://egoing.net/1369#entry1369comment</comments>
			<pubDate>Tue, 16 Feb 2010 00:55: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노무현</title>
			<link>http://egoing.net/1368</link>
			<description>명절이라 대구에 내려와 있다. 보수의 심장인 이곳에 있자니 노대통령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권양숙 여사가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묘역공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나는 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의아한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검색을 해봤더니 예상대로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제일 먼저 &#039;아주 작은 비석 건립 위원회&#039;가 꾸려졌고, 유홍준 교수나 황지우 시인과 같은 각계의 명사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그리고 &#039;빈자의 미학&#039;으로 유명한 승효상씨가 묘역의 설계를 담당했다. 명사들이 참여해서 만든 묘비명과 최고의 석공이 만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인공비석. 여기에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대규모의 묘역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노대통령의 비석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못생긴 돌멩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묘석을 만나러 가는 길이 비가 오면 진흙이 묻고, 눈이 오면 갈 수 없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노대통령은 결핍의 의미를 잘 이해하는 어른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냈고, 사람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는 날 때부터 풍요로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타인의 참여로 풍부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남겨진 이들이 그의 죽음을 작게 묘사할수록 이 죽음은 더 크게 빛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그의 작은 비석이 아니라, 거대한 부엉이 바위를 가르켜 그의 비석이라고 부를 것이다. &lt;br&gt;&lt;br&gt;&lt;br&gt;&amp;nbsp; &amp;nbsp; + &lt;a href=&quot;http://egoing.net/1130&quot;  target=&quot;_blank&quot;&gt;난세 후&lt;/a&gt;&lt;br&gt;&amp;nbsp; &amp;nbsp; + &lt;a href=&quot;http://egoing.net/1171&quot;  target=&quot;_blank&quot;&gt;죽음&lt;/a&gt;&lt;br&gt;&amp;nbsp; &amp;nbsp; + &lt;a href=&quot;http://egoing.net/1195&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lt;/a&gt;&lt;br&gt;&amp;nbsp; &amp;nbsp; + &lt;a href=&quot;http://egoing.net/1314&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거&lt;/a&gt;&lt;br&gt;&lt;br&gt;&lt;br&gt;</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68</guid>
			<comments>http://egoing.net/1368#entry1368comment</comments>
			<pubDate>Sat, 13 Feb 2010 18:43: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파티</title>
			<link>http://egoing.net/1367</link>
			<description>파티플래너로서 첫 데뷔를 마쳤다. 이번 파티의 메인 컨셉은 식순을 줄이고, 참여자들끼리 서로를 즐기는 &#039;그냥 내비둬&#039;였다. 유일한 프로그램이 자기소개였는데, 이 시간조차도 아끼기 위해서 10초로 제한했고, 불필요한 추임새 때문에 시간이 낭비될까 봐 이런 말도 했다. &#039;진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앞으로 참신해질 시간이 3시간이나 남았고, 3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039; 사람들은 무슨 파티가 이렇게 날림이냐며 쿠사리를 주면서도 즐거워했다. 나는 절차지향적인 잔치가 아니라, 객체지향적인 파티를 기획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진행에 자신이 없기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날은 우리 모두가 파티플래너면서 호스트였다. 나는 단지 파티를 제안하고, 공헌자와 스폰서를 모집하고, 파티의 시작을 알렸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진행이 억제되자, 참석자들이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만들어서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찍사인 s군이 단체사진을 제안했고, 기념촬영이 끝나자 누군가 여자들끼리 찍자고 그랬다. 그 때부터 카테고리 게임이 시작 되었다. 남자와 여자, 개발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애매한 직군들, 우리회사가 배출한 CEO들, 기혼자와 미혼자, 솔로와 커플 등등등. 내 생전 기념촬영이 40분 넘게 걸리는 경우는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진행의 결핍이 구성원들의 참여로 풍부해지고 있었다. 행복했던 한 때가 지나가고 있었다.&amp;nbsp;</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67</guid>
			<comments>http://egoing.net/1367#entry1367comment</comments>
			<pubDate>Thu, 11 Feb 2010 23:08:1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소통</title>
			<link>http://egoing.net/1365</link>
			<description>얼마전 미국인 친구인 앤드류와 단둘이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나의 영어가 앤드류의 한국어보다는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어는 꽤나 형편없는 것이어서 우리의 대화는 행위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무려 &#039;인생&#039;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시간이 부족해서 금방 또 보자고 약속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데 있어 언어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데 있어서 언어는 가장 쉬운 것 중의 하나이다. 같은 한국사람, 미국사람끼리도 서로의 관심이 다르고, 이해가 부대낀다면 동포가 아니라 가족이라도 외국인 보다 못한 것이다. 소통의 심장은 마음.</description>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65</guid>
			<comments>http://egoing.net/1365#entry1365comment</comments>
			<pubDate>Mon, 08 Feb 2010 18:01:4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명절</title>
			<link>http://egoing.net/1363</link>
			<description>명절만 되면 동갑내기 육촌을 만난다. 그런데 우리 사이가 참 어색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낯을 가리지 않는데 유독 이 친구랑 있으면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의 책임은 일차적으론 당사자들의 문제지만 이차적으로는 부모세대의 탓이고 근본적으로는 시대의 문제다. 어른들에게 사촌은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란 동무사이이다. 하지만 육촌지간인 우리는 일단 관계도 멀 뿐 아니라 일년에 한두번 잠깐씩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사촌의 자식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바램일 뿐이고 우리입장에서는 머나먼 남인게다. 다 커서 만났으면 모를까 꼬꼬마 때부터 어색한 사이로 굳어진 우리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것은 참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새삼스러운 것의 위력은 대단하다. 명절의 문제는 오만가지 긴장을 죄다 덮어두고 그 앞에 즐거운이라는 수식을 철석같이 붙여 놓는다는 점이다.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간주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습관이다.</description>
			<category>명절</category>
			<category>친척</category>
			<author>(egoing)</author>
			<guid>http://egoing.net/1363</guid>
			<comments>http://egoing.net/1363#entry1363comment</comments>
			<pubDate>Sun, 07 Feb 2010 21:33:39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