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교 때 활동했던 문학동아리 선후배를 만났다.
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동아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술자리에서는 동아리 재건을 위한 방안이 논의됐고,
이번에도 그랬다.
어떤 이들은 일어나서 재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역설했고,
어떤 이들은 앉아서 현실성이 없다며 공허함을 토로했다.
하나의 술자리를 두고 형성되는 윗공기와 아랫공기의 온도 차는
서울 생활의 출발점이었던 옥탑방의 겨울공기처럼
가벼운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다음에 개설된 동아리 카페에 오랜만에 걸음 했다.
게시물들은 1년에 한 번씩 있는 정기모임을 주기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며 나이테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습관의 흔적은 꽤나 견고해 보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生과 노老와 병病과 사死라는 여정을 거친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것만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며 만들어진 조직도
엄연히 살아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조직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나는 壁문학회를 이제 편안하게 안락사시켜주고 싶다.
"너무 아쉽지 않나요?"
맞은 편에 앉아있던 후배가 되묻는다.
동아리가 몰락하던 시기에 회장을 맡았던 녀석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친구들이 경험했을 문학회는
스스로 황금기라고 정의하는 자부심 많은 선배들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임을
그 우울한 공기에서
도대체 추억할 무엇이 있었다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그 마음이 고맙고,
좋은 동아리를 물려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다.
마음이 하 심란하여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았다.
왠지 이 영화라면 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시 동아리가 있었고,
우리처럼 사라졌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동아리의 일원이었던
키팅 선생이 부임했다.
그는 참교육을 실천하였고,
그의 가르침을 존경하던 아이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부활시킨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활이 또 있을까?
입시지옥속에서
카르페디엠을 외치며
엄숙한 교정의 질서에 도전하며,
예술이 무엇인가를 처절하게 고민했던
우리의 정신이라면
그것이
시가 아니어도 좋고,
문학이 아니어도 좋고,
壁이 아니어도 좋다.
동아리의 재건을 위해 분주하기보다
우리의 유산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여,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열어젖힐 누군가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죽은 시인의 사회는
모임 자체가 아닌,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카리페디엠의 의미를 깨우친 키팅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키팅 선생님을 통해
카르페디엠의 의미를 깨우친 젊은 제자들이었고
우리가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壁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물론,
나는 나의 사랑하는 선배와 후배들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주의한 글이 그들의 노력에 대한 냉소로 오독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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