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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2   병원 (10)
2007/08/27   이모티콘 얼굴로 고쳐주세요. - plastic syndrome (18)
2007/08/26   감정의 의외성 (6)


병원
분류없음 | 2008/07/02 08:58
귀속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
40대로 보이는 의사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까칠한 여자였다.
나의 귓속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귓구멍이 어쩜 이렇게 작지?"라며 모호한 감탄을 연사했다.
사실 그 병원은 3년 전부터 불편할 때마다 찾는 단골의원이었다.
문제는 이 의사가 볼 때마다 귓구멍이 작다며 조롱과 감탄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참다 못해 강력하게 항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접수창구에서 간호사에게 얼마냐고 묻는다.
5천원이라고 한다. 나는 신용카드를 꺼냈다.

혹시,
득의양양한 복수를 눈치 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replay를 해드리면
5천원이라고 한다. 나는 신용카드를 꺼냈다.




다음 날,
의사의 지시에 따라 다시 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에서 의사의 까칠함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앞서 치료를 받고 있던 남자는 코를 심하게 풀어서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나 보더라.
쭈뻣거리던 남자는 상투적인 질문을 한다.
"흔한 경우가 아닌가 보죠?" 날 선 목소리가 돌아온다.
"흔치 않죠. 그렇게 코를 심하게 푸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나) "역시 까칠해"

다음 남자는 코의 점막에 문제가 있는 비염환자였다.
남자는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었는데.
수술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물었다.
의사는 역시 카칠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했다.
환자와의 상담은 1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환자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는 여유도 부리고 있었다.
아주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는 의사치고는 꽤나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 2,30분씩 기다려서
불과 1~2분 알현하고 끝나는 경우가 횡횡한 병실 트랜드에
까칠한 여의사는 의외의 인내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환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우유부담함과 딜레마 속에 가둬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합리화시키기 마련이다)

차례가 왔다.
나는 부러 씩씩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까칠한 의사가 뜻 밖의 미소를 작렬하며 귓속을 요리저리 후벼준다.
좀 아프기는 했지만, 참으로 시원했다.
우울한 귓구멍에서부터 묘한 울림 같은 것이 엄습한다.
아 경망스런 감정의 변덕이여~
"얼마예요?"
"2100원이요"
나는 주머니 속을 삿삿히 뒤져서 2100원을 만들어 현금을 건넨다.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다.
잘해주던 사람이 한번 잘 못하면
위선자다, 겉과 속이 다르다며 온갓 저주를 퍼부으면서
까칠하던 인사가 한번 친절을 배푸면,
감동 감화받으며 사실은 좋은 사람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감정에도 일종의 밑천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께다.
밑천이 다 떨어지면 꺼낼 카드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친절하기만 한 사람은 친절함에 대한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는 더 이상 불친절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삶은 긴장의 연속이 되는 것이다.

물론, 친절한 사람이라고 밑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절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엘레강스한 수단은 '정색'이다.
친절함 속의 정색은 강력한 의사표현이 된다.

문제는
까칠함 속의 친절이 상대에게 감동을 일으키지만,
친절함 속의 까칠함은 상대에게 배신감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여러모로, 친절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2008/07/02 08:58 2008/07/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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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epay 쇼핑몰 전문 블로그 2008/07/02 09:49 x
제목 : "쇼핑몰 웹사이트" 빛깔은 어떤게 좋을까?
오늘 하루는 쉬어야 겠다.. 놀러가는 것은 아니고 이가 아파서 쉬는 것이다..새벽까지 잠을 설쳤더니 눈이 빨갛게 되었다.. 내가 마마호환보다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치과 특히 치료할 때 나는
mepay 2008/07/02 09:49 L R X
오랜만에, 글 보네요.^^
egoing 2008/07/02 12:00 L X
요즘 회사일 때문에 좀 바뻐서요 ;; ^^
미구엘 2008/07/02 11:39 L R X
이고잉님, 작가되실 생각 없으세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드문 글솜씨인데...^^
egoing 2008/07/02 12:00 L X
작가라뇨. 그냥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칭찬은 감사히 꾸벅 ^^
CK 2008/07/02 17:51 L X
미구엘님이 이고잉님의 하루를 밝게 만들어 주셨네요. 영어 표현으로는 "You made my day"란 말이 있는것 같던데요.

(물론 번역 스팸식으로 표현하면,
"당신은 만들었다 나의 하루!")
egoing 2008/07/03 15:11 L X
ㅋㅋ
ls0018@naver.com 2008/07/02 14:54 L R X
귓병이 나서 괴롭진 않은감?
나 같으면 괜히 남의 귓구멍 가지고 난리야..투덜투덜 요딴 흰소리만 혼자 해대거나, 아님 진짜 용기를 발휘해 "제 귓구멍이 작아서 치료가 안 됩니까?" 했을 텐데, 참 많은 생각을 했구나. ^^
'친절함 속의 정색' 부분에선 갑자기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모호하게 떠올라서 마음을 시리게 한다.
난 스스로가 꽤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ㅋㅋ 또, 꽤 그런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 쓰는 편인데 말야, 아주 가끔은 그런 '나의 친절'이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기 쉬운 빌미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상대적인 거겠지만) 친절한 사람에게 되려 거부감을 갖고 얕보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
네 말대로, 여러 모로 친절하게 살기 힘든 세상 속에서 친절하게 살다가 마음 시릴 때 있다면, 개인 방어적인 측면에서 그 친절함을 좀 억제할 필요가 있겠군..하는 생각이 드네.
사소한 일에 상처 받고, 정말 사소한 일에 마음 시린 일상. 나에게 한없이 항상 친절했고 맹목적인 사랑만 줬던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다.
egoing 2008/07/03 15:11 L X
그러게나 말일쎄. 나도 별로 친절한 축은 아니지만, 세상이 참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 떄가 많아.
쉐아르 2008/07/04 00:36 L R X
잘 봤습니다 ^^ 그런데 다른 환자와 의사와의 대화를 들을 수 있나요? 어느 병원 벽보에 노조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한다며 혼자만 들어가게 해야한다는 것을 봤는데, 정말 여러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나 봅니다.
egoing@gmail.com 2008/07/04 07:33 L X
작은 병원이라 대기실과 진료실이 가깝거든요. 특히 이비인후과나 치과는 구조적으로 격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곳들은 프라이버시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는데. 비뇨기과 같은 곳은 좀 크리틱컬하겠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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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얼굴로 고쳐주세요. - plastic syndrome
생각 | 2007/08/27 00:14

언제부터일까? 이모티콘이 없이는 글쓰기를 연명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다. 포스팅은 문제 없지만, 특히 댓글의 경우 이모티콘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사무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모티콘의 또 다른 문제는 우리의 안면 근육이 이모티콘과 닮아 간다는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섬세한 묘사를 통해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을 사진보다도 효과적으로 표현했을 글쓰기가, 이모티콘이 등장하면서 ^^ 유유 :) 이런 식으로 패턴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복잡한 감정을 문장으로 담으려는 시도는 '진지함', '거창함' 이런 식으로 매도되기 일 수이다. 언어의 핵심을 언어의 사회성이라고 했을 때 이모티콘은 패션 넘어 트랜드를 거쳐 생활로 정착되고 있다. 이 사회성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인간의 감정은 언젠가 멸종할 것이다. 일본인들이 커피를 고희로 발음하는 것이 그들의 문자인 가타카나, 히라카나의 한계 때문이듯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보다 복잡한 세계에 살게 했지만, 인간을 보다 단순화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안 쓸 수 없다는 거! ㅠㅠ(^^;;)


2007/08/27 00:14 2007/08/2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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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2007/08/27 22:57 L R X
-_-;;
egoing 2007/08/27 23:47 L X
_ _;;
민노씨 2007/08/27 23:02 L R X
정말 블로깅하면서부터 이모티콘을 참 많이 쓰게 된 것 같긴 하네요. : )
egoing 2007/08/27 23:52 L X
예 맞습니다. 이제 이모티콘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군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비밀방문자 2007/08/27 23:03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going 2007/08/27 23:55 L X
사려깊음에 다시한번 감사 :)
비밀방문자 2007/08/27 23:47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비밀방문자 2007/08/27 23:52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going 2007/08/27 23:59 L X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전 속독이라는 글을 쓴적이 있었습니다. 그글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속독이라는 일종의 신드롬이 아니라, 조급함이 었습니다. 요즘 '느림의 미학'이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 저런 재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경구를 어디선가 본듯합니다만)
한날 2007/08/28 02:21 L R X
잇힝~ ^^*

전 잘 안쓰는 편이라 그런 지 글자와 글자 사이 사이, 글 내용만으로 분위기를 전달하지 못하곤 합니다. 전 웃자고 가볍게 쓴 글인데 무척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끙~
egoing 2007/08/28 08:20 L X
이건 웃자고 쓴 댓글 아니시죠? 예 점점 그런 상황은 심해질 것 같내요.
egoing 2007/08/28 08:21 L R X
애밀래 종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미술관에서 종과 종각 사이를 고정하는 철봉이 너무 오래되서 이것을 교체하려고 했데요. 그래서 포항제철에 주문해서 동일한 크기의 철봉을 만들었죠. 그런데 이 봉이 종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거예요. 포항제철에서는 합금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포기했죠. 미술관에서는 예전부터 사용하던 철봉을 다시 사용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유홍준씨는 이것을 시대정신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미래가 진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꺼라는 것이죠. 잊혀진 과거의 찬란함은 어디에나 있잖아요? 잉카, 인디언, 전통.....

글쓰기도 그렇게 될꺼예요. 예술의 제왕으로 굴림하던 글쓰기는 영상에게, 음악에게, 디자인에게, 심지어 이모티콘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꺼예요. 그렇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 날이 있듯이, 모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뽀리군 2007/08/28 23:52 L R X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더욱 단순하게 한다는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멋집니다 -ㅅ-b (이런 말 하면서도 계속 단순한 짓을 하네요.)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사람의 표정을 단순하게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씁니다. 사람의 표정은 이모티콘을 닮아가면서 단순해집니다. 그런 표정을 더욱 단순한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쓰고...
왠지 무서운데요? ;;

(참, 트랙백 전송이 안 되네요. 이거 왜 이러는건지..)
egoing 2007/08/29 00:33 L X
댓글 감사합니다.
저의 글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냥 감성적인 표현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표현은 인간성을 단순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스티븐 잡스 때문에 미니멀리즘이 대박이 난 것 같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매력적인 가치임에 틀림없습니다만, 미니멀리즘은 다양성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봉우리 중에 하나여야지, 그것이 오늘날처럼 광범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언어가 이 복잡성을 표현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편하고, 쉬운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많은 마음의 병들이 해결되잖아요?

지능은 매우 높지만, 감성은 어린아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미래는 아름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트랙백. 제 쪽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요?

댓글 감사하구요.
sunny 2007/08/29 14:16 L R X
^^* --> 이쁘게 씨~익
ㅡ.ㅡ --> 흠...
@.@ --> 오잉 표정
단조로운 글에 활력 정도로 해석해도 될듯 하네요.



egoing 2007/08/29 14:22 L X
^^ 그렇죠? ㅋ
심리 2007/12/04 20:20 L R X
~_~a 과연 그렇겠군요! ^~^
저도 인터넷 생활하면서 이모티콘을 쓰게 되었는데, 이게 나름대로 편리하긴 합니다. 감정, 표정을 쉽게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아마도, 인터넷은 얼굴을 직접 마주보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니까 얼굴 표정을 표현하려는 보조수단으로 쓰게 됐다고 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비언어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니까요. 표정, 억양, 손짓, 몸짓.....

저는 이러한 단순화 현상이 도덕이나 종교 교리, 이념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사람의 감정이나 취향, 진실은 복잡할 수 있는데도, 이를 억지로 도덕, 교리, 이념에 맞추어 제한하고, 그 정해진 틀에 벗어나는 감정, 취향, 진실을 가지 쳐서 내다버리려는 태도...... 말이지요.
egoing 2007/12/05 10:25 L X
언어생활이야말로, 가장 일상화된 억압이겠죠. 그것이 풍부하면, 학습 및 수용의 억압이 생길 것이고, 그것이 빈약하면, 표현에 대한 억압이 생길테니. 억압은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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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의외성
생각 | 2007/08/26 23:02

#1

날씨는 덥고 훈련은 무료했다. 강당 입구에는 지루함을 견뎌보고자 예비군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나무그늘 아래에는 동대장들이 들으나 마나 한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대장:훈련 교관) 한 예비군이 동대장들의 일단을 향해 걸어간다.

"조퇴를 좀 해야겠습니다"

시간은 4시. 5시면 훈련이 끝날 터였다. 동대장 중 한 명이 갸우뚱하며 묻는다.

"한 시간 후면 훈련이 끝나는데 좀 기다리시지 그래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예비군의 안면은 초점이 다소 흐려졌을 뿐, 어떠한 감정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동대장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귀동냥으로 사정을 엿듣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사람의 뜻밖의 불행도 그랬지만, 어떠한 감정도 흘리지 않는 예비군의 모습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분주하게 했다. 나는 도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강당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예비군은 전파를 수신하지 못한 브라운관을 가득채운 수많은 실밥 한 가운데 검은색 불량화소처럼 요지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곧 오열할 것이다.


#2

내일모레 군입대를 앞두고 고장 난 이빨을 수리하러 치과에 가는 길이다. 아버지와 나는 오히려 평소보다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매일 지나가던 익숙한 길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좋은 기분이다. 얼쿠! 과속방지턱을 미쳐보지 못했던 나에게 노면의 굴곡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 순간 왈 콱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나는 재빨리 눈물을 훔친다. 왜 이러지? 입대를 앞두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던 나를 내심 든든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나 눈물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발견할 때까지..... 아버지는 털털하게 웃어 보였지만, 우리는 치과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


내일 군입대를 앞두고 나는 가까운 친지에게 전화로 인사를 한다. "저 내일 군대 가요" 똑같은 맨트와 똑같은 반응이 막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여보세요"

저쪽에서 이모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모 잘 계셨죠? 저 태경인데요. 저 내일 군대가요"

나의 목소리는 권태롭게 느껴질 정도로 차분했다.

"어 태경아. 군대 간다고?"

왈 콱 전혀 예지하지 못했던 울림이 목젓에서부터 느껴지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불과 1초가되지 않는 사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ㅇ..."

더는 말을 잊지 못했다. 목이 매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모.
나에게 서수를 붙이지 않은 이모는 셋째 이모를 의미한다. 88년 전까지 이모부는 청주에서 손꼽히는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모부의 회사에서 총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철제를 가공하던 이모부는 전자업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어렸던 나는 공장에서 부지런히 납땜을 하던 누나들의 손놀림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윤가라는 사기꾼과 상공회의소의 고위인사가 개입하면서 급기야 부도를 맞게 되었다. 이모부의 전 재산은 증발했고, 얼마 후 이모부도 세상에 안 계셨다. 파국은 우리 가족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칡 흙같은 어둠을 틈타 대전 큰 이모 댁으로 야간도주라는 것을 했다. 누나와 나는 맡겨졌고, 아버지는 유치장이라는 곳을 다녀왔고, 엄마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이모부를 원망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당신들은 혼자가 된 이모를 언제나 걱정했다. 이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3이었던 이모의 아들인 사촌형은 삭발을 했다. 전교일이 등을 다투던 형의 친구는 서울대 법대를 차석으로 들어갔지만, 형은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이모부를 대신해서 형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석했다. 형은 처음부터 나의 정신적인 맨토였고, 내가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비좁은 옥탑방의 한구석을 흔쾌히 내어주었다. 이제는 그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그 당시의 아픔은 어렸던 나에게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시련을 함께 극복한 이모는 단순히 '친척'이라는 어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뜻하고, 가엽고, 감사하고 와 같은 복잡한 수사로도 잘 설명이되지 않는 무엇이다.

"태경아 잘 갔다와"

".ㅇ..ㅕ.ㅣ..."


나는 바보같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2007/08/26 23:02 2007/08/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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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che 2007/08/27 00:39 L R X
누구에게나 시시콜콜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사정을 겪고, 치유하고, 다시 원래의 생활을 찾아가고... 그러는거 같아요.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지금이니까 다시 곱씹어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egoing 2007/08/27 09:33 L X
맞아요. 그리고 저런 가혹한 과정을 통해서 가족들은 휠씬 견고해졌구요. 제가 진혁이를 이뻐하는 것도, 누나랑 같이 고생한 경험이나, 가족의 소중함 이런 것들의 결과이구요.
time0808 2007/08/28 00:03 L R X
태경님 얼~~라를 나~~아보삼 더 이쁘지롱~~~!!ㅋㅋ 안녕 주무세요 (예의 바르게) 꾸벅
egoing 2007/08/28 00:41 L X
예 타임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
xizhu 2007/08/28 10:46 L R X
마음이 번쩍 뜨이는 글, 잘 읽고 갑니다
egoing 2007/08/28 13:54 L X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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