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피는 붉은악마의 티셔츠만큼 검붉었다.
많이 울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눈물을 영화의 시선은 요구하는 듯했다.
수송기, 핼리콥터, 탱크, 기간총.
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장한 시민들.
그런데 이 영화에 이런 류의 스팩터클이 과연 필요했을까?
일방적이고, 압도적이면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살육전의 대미를
전쟁으로 장식한다는 것은 전장군 일행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전쟁은 무엇인가?
법과 윤리의 오랜 협력관계를 끊어버리는 행위이다.
법에 의해 오랫동안 내면화된 윤리는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다.
이 압도적인 폭력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어떤 이는 무력감에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어떤 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새로운 윤리를 찾는다.
애국심, 전우애, 생명에 대한 무관심.
전쟁은 점점 일상이 된다.
우리는 스크린 속에 박제된 전쟁을 통해
스크린 밖을 지배하는 법률과
그에 복무하는 윤리에서 자유로워지는 사치스런 간접경험을 한다.
그날의 광주 역시 그것이 전쟁으로 그려지는 순간
살육에 대한 저항감은 희석되고 말았다.
나는 이 영화에서 재현한 폭력이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아니라 '친구'이기를 바랬다.
가해자에게는 전쟁이었겠지만,
피해자에게는 조폭들의 난장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하기보다
대.한.민.국이 민초들에게 자행했던 철저한 폭력이
허무하고, 고독하게 그려지는 것은 어땠을까?
나는 이 영화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철저히 절망해야 한다.
그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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