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 신변잡기가 아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미니홈피와는 다르게 블로그는 뭔가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로거들의 세계에서는 '블로거는 어때야 하는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네이버 700만 블로그 중 대다수가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거나, 스크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블로그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어쨌든 블로그는 글을 쓰는 공간이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블로그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이 대화상대가 모호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가설로 세우고, 나는 어떤 방법으로 이 막막함에 대처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 ABC 마트에 운동화를 사러 갔을 때의 느낌은 '난감함'이었다. 물건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인 법이다. 물건은 많은데 살 것이 없다. 이것은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글쓰기의 소재가 무궁무진한데, 우리는 글거리가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것은 대화와 발표의 차이를 통해 그 심리적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대화를 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혹은 전화로 메신저로 댓글로 이메일로. 그런데 이랬던 우리가 무대 위에 올라서 발표를 하려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소위 무대 공포증이라는 것. 발표의 달인들은 앞에 앉아있는 청자 중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최면을 걸라고 조언한다. 즉, 발표도 대화처럼 하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휼룡한 발표는 청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시종 흥미진진하게 '대화'하는 것임에 반해 대화의 자리임에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화를 '발표'처럼하는 것이다. 자신을 달변이라고 여기는 자아도취에 빠져있겠지만, 참여를 용납하지 않는 대화에 참석하고 싶어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은 없다. 대화건 발표이건 바람직한 소통의 요체는 상대방과의 긍정적인 심리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상호작용임이 분명하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는 allblog나 eolin 같은 블로그 커뮤니티(메타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 서비스의 간판에 걸리는 주제들은 블로고스피어의 박스오피스라고 할만한 것들이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이 주류언론이 세팅한 의제에 편승함에 반해 이들 서비스는 블로거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여과 없이 전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상정하는 주제가 IT 이슈에 치우친 감이 있고, 디워와 같이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높은 트래픽을 도모한다거나, 한나라당과 같이 일방적인 이즈매로 치우칠 수 있는 상품들을 중심으로 진열한다는 점은 건설적인 글쓰기에 독이 돌 수 있다. 네이버의 경우 블로그씨라는 캐릭터가 정기적으로 블로깅 꺼리를 배달하고 있다.
다른 방법은 댓글을 포스트로 전환하는 것이다. 댓글이 포스팅에 비해 수월한 것은 타인의 포스팅 혹은 타인의 댓글이라는 대화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타인의 포스팅에 댓글을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댓글에서 생산적인 담론의 잉태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를 자신의 포스팅으로 다시 옮기는 것이다. 댓글을 '띡'다는 것만으로도 뇌 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문제의식과 표현에 대한 욕구를 흔들어 깨우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자신의 포스트를 다른 사람에게 트랙백으로 보내거나, 다른 사람의 댓글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블로그 세계에서 외연을 점차 넓혀가고, 공동체의 고민을 함께 함으로써 글쓰기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호작용이야말로 블로고스피어 역동성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인 자극적인 언사는 필연적으로 악플러라는 망령을 소환한다는 점이다. 악플러가 따라붙으면 생산적인 담론은 이미 틀린 것이다. 만약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한다면 악플러의 쇄도가 돈의 지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폐해는 더욱 크다. 최근 공성술의 발전으로 에드센스라는 것을 통해 공격을 돈으로 반사시키는 태극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러한 공방이 아름다운 풍경이 아님은 분명하다. 많은 댓글과 조회 수를 원한다면 진중권 씨처럼 샤우트 창법으로 질러대면 그만이다. 블로그는 순식간에 콘서트장으로 변모해 대성황을 이룰 것이다. 콘서트는 대박이 나겠지만, 심형래 씨와 진중권 씨의 팬들은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것이다. 손익은 분명하다. 꼭대기는 돈을 벌고,아래는 돈을 잃는다. 문제는 콜로세움과 아테네의 입지조건이 서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콜로세움의 쏠쏠한 입장료를 취할 것인가? 아테네 학당을 열고 불멸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문체는 태도이다. 얍삽하게 말로만 예상되는 반론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문체를 통해 정중함을 견지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고등학교 논술을 직업으로 하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논술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이 어떤 주제를 놓고 고민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고민을 대신해주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친구의 말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렇고 지금의 논술교육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문제 풀 듯이 누군가에 의해 세팅된 주제를 글쓰기의 대상으로 한다면 글쓰기의 중요한 목표인 문제의식 설정과 이를 통해 고양되는 창의성은 저하될 우려 들었다. 고교생들의 논술을 지도하고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방식의 사각을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 스스로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설정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소양을 키워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몇몇 방법을 통해 포스팅의 단초를 제공받는 것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가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문제의식을 타인에게 아웃소싱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제의식은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식의 중요함에 비하면 문체의 유려함, 논리의 정교함 같은 것들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아교풀과 같은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아젠다,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의 동향, 타인의 생각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글쓰기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인의 개성을 발굴하고, 공동체의 다양성에 기여하는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공동체적 연대감은 물론이고 개별적인 독립성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ABC마트로 돌아가 본다. ABC마트 같은 곳에 나타나서 꼼꼼히 물건을 살핀 후 합리적인 구매를 한 후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을 나는 쇼핑의 고수라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은 기껏 눈썰미 좋은 친구를 대동하거나, 점원에게 추천을 부탁하는 정도니까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 고수와 범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수는 스스로가 모델이면서 코디라는 이중적인 역할극을 수행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타인의 시선을 가진 것이다.
글쓰기에도 고수는 있다. 그는 미디어나 여론 또는 타인이라는 자극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선험 자의 성취와 자신의 창의를 질서 정연하게 구분해 스스로 과제를 제시한 후 이를 탁월한 솜씨로 이뤄나간다. 이들은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공동체와 내면에 대한 관찰과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세상이 야만적인 열정에 휩싸여있을 때에도, 흐트러짐 없이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열정적이지만, 열정에 노예가 되지 않으며, 그의 열정은 경쟁에 의해 획득한 자아도취적이고 배타적 열정이 아니고, 타인에게 전파되는 종교적인 열정이다.
아! 내가 죽기 전에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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