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보러 청주에 다녀왔다. 시외버스의 조명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힘차게 시동이 걸렸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알듯 말 듯한 소리가 묘한 불안감을 자아내면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본 순간 불안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젠장. 차에는 TV가 설치되어있었던 것이다. 또 고행이 시작되는 구먼.....
나의 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은 1년 전 이었다. 중이염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을 때, 통나무같이 쌀쌀맞은 여의사는 30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던 신체의 비밀을 귓속말로 알려줬다. (그녀가 만약 코를 후벼주고 있었다면 콧속 말로 했을 것이다.)
“귀 구멍이 보통 사람의 1/5밖에 되지 않아요.
어떻게 뚫려있는지 신기할 정도 내!!!”
냉담하면서 조롱 섞인 어조였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조금만 더 근엄했더라면, 조금만 더 따뜻함을 가장 했더라면, 나는 얼마나 큰 불안에 휩싸였을까? 마음껏 조롱할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넓다는 소리에 나는 안도했다. 사건이 있은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간 풀리지 않았던 의혹도 풀리는 듯 했다.
나의 청각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까지도 잡아낼 정도로 예민한 편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여의사의 발설을 듣고 보니 잘 들리지만, 잘 듣지 못하는 모순되는 청력은 나름 근거 있는 관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좀 변태적인 청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나를 괴롭히는 것은 큰 소리가 아니니라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이다. 소리가 작을수록, 그것의 방향성, 반복성, 리듬감, 의미, 악의와 같은 것들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방향을 종잡을 수 없고, 모호한 리듬감을 가지고 반복되면서, 불가항력이 아닌 일종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오! 정말이지 나는 이런 모습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버스의 중간쯤 되는 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장내의 승객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TV에는 MUTE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찍혔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버스는 천안께를 지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2시간에 걸친 운명을 나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사려 깊지 못한 서비스에 대한 분노는 삭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분노에 불을 지르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다. 첫째, 채널이 바뀌는 경우, 둘째,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간신히 셋팅한 노이즈 캔슬링을 새로 튜닝해야 하는 거지 같은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끝난 후, 무슨 드라마가 하고 있었는데, 자식 간의 결혼을 앞두고 사돈 간에 막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다. 분연히 앉아서 이렇게 외쳤다. 속으로.
"강하게 항의하겠어요! 인터넷으로!!!!!"
버스는 오산께를 지나고 있다. TV의 소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체, 쇠약해진 신경을 유린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소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목소리가 뭐라고 씨불이는지는 도저히 분석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버스여행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라고 할까?
이쯤 하면, 소음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소음이 있다. 하나는 불가항력적인 소음, 다른 하나는 악의에 의한 소음이다. 불가항력이라는 것은 도로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악의적인 소음이란 폭주족 같은 쉐이들이 배설하는 똥 같은 것이다. 악의를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을 모두 아우른다. 이를테면, 지금 이 버스의 TV로 인한 소음은 기획자의 몰상식으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다.
버스에서 TV를 틀어줘야 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지만, 기사님에 의해 제어되는 채널과 볼륨을 중앙스피커를 통해 브로드캐스팅 할 생각을 누가 했을까? 이건 탁상공론의 악취가 난다.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에는 고객이 소외되기 마련이다. 나는 정말이지, 이것을 기획한 분들에게 분노의 펀치를 브로드캐스팅하고 싶었다!
소음이 이것뿐이겠는가? 신혼부부들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해볼까 생각 중. 19금으로), 취객의 난동, 자동차 엔진 소리, 우퍼를 삶아 먹은 것 같은 보일러 소리, 이어폰 밖으로 새어나오는 소리, 잔소리 등등. 도시는 소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이다.
아! 이 세상의 모든 소음을 어찌할까나? 버스는 강남터미널로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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