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은 전체적이고, 순간적이며, 감각적임에 반해, 논리는 부분적이고, 금뜨고, 언어적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은 직관적이고, 글쓰기는 논리적이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직관과 논리의 적절한 조화에 애를 먹고 있다. 그 핵심에 펜과 키보드가 있다. 현대인이 생각을 전개하는 기본 도구는 역시 키보드이다. 이것은 펜보다 빠를 뿐 아니라, 피로가 덜하며, 아름다운 폰트로 악필을 숨길 수 있다.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생각은 더 이상 펜을 통해서 쌓아올려지지 않고, 키보드를 통한다.
자연스럽게 펜의 설자리도 줄고있다. 그렇다고 펜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펜은 키보드 따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장점들이 수두룩하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자유도다. 키보드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스럽게도 딱 자판만큼이다. (정확하게는 6 만 5,536자) 펜은 다르다. 그것은 글쓰는 이의 개성과 감정상태를 암시할 뿐 아니라, 자기만의 기호를 즉석에서 정의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물이나 관념을 이미지로 묘사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키보드는 근본이 묘사에 약하기 때문이다.
주류가 된 키보드와 멸종 위기에 처한 펜은 인간의 사고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일례로, 사람들은 더 이상 낙서를 하지 않는다. 낙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각박한 현실의 도피처이면서, 의식에 짓눌린 무의식의 해방구이다. 낙서가 사라지고 있다. 논리적인 키보드는 낙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야동 못지 않은 위협이다. 펜의 몰락과 키보드의 등장으로 직관은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다 행스럽게도 오늘 날 UI의 화두는 타블랫, 터치, 햅틱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논리 편향적인 키보드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런 것들이 한개도 없다. 유감이다. 정말.....;; 그건 그렇고.
또 다른 구석에서는 직관에 의해 논리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 과거에 컴퓨터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했다. 한줄 한줄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egoing이라는 디렉토리를 만들고, 그 디렉토리로 이동한 다음에, 그 디렉토리에 어떤 파일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이 해야 한다.
mkdir egoing; - 현재 디렉토리에 디렉토리 egoing을 만든다.
cd egoing; - 방금 만든 egoing 디렉토리 안으로 들어간다.
ls -al; - 디렉토리 egoing 안에 어떤 파일이 있는지 확인한다.
유닉스 명령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참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GUI이다. GUI란 Graphic User Interface의 약자로, 인터페이스_ Interface란 컴퓨터와 사람이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통역인데, 하드웨어적으로는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가 있고, 소프트웨어적으로는 버튼이나, 체크박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 그래픽 유저_Graphic User란 무엇인가? 과거와 같이 오만종류이 추상적인 명령어를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디렉토리는 폴더, 프로그램은 아이콘, 프로그램을 담는 구성요소는 윈도우, 이런 식으로 일상생활 속의 메타포를 이미지로 형상화해 마우스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GUI다. 이제는 어렵고 복잡한 명령어를 토닥 토닥 입력하지 않고도 컴퓨터를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GUI 의 핵심은 바로 직관성인데. 탁 보면 대충 머하는 건지 알 수 있다. GUI는 컴퓨터 대중화의 핵이었고, 이것이 없었다면 컴퓨터는 오늘 날의 슈퍼컴퓨터처럼 자폐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GUI는 두말할 것없는 혁명이다. 그 증거는 빌게이츠의 재산이다.
(이제부터, CLI를 설명한 건데요. CLI란 Command Line Interface의 약자고, 옛날의 도스 시절처럼 시커먼 화면에 명령어를 입력해서 컴퓨터를 제어하는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GUI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논리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 예를들어, 매일 새벽 4시에, home 디렉토리에 있는 파일의 리스트를 egoing.txt에 저정한 후에, 이를 압축한 하고, ftp로 전송한 후에 성공여부를 이메일로 알려줘야 한다고 치자. 윈도우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GUI의 대척점에 서있는 CLI_Command Line Interface에서는 이 모든 작업을 위해서 몇개의 명령어를 조합하면 가능하다. 특히나, 명령의 묶음을 파일로 만들어 놓으면, 이 파일을 호출함으로써 작업을 재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GUI의 압도적인 성공 속에서도, CLI의 장점은 여전하다. 그 증거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무리 대중시장에서 번 돈을 쏟아부어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서버를 운영하는 이른 바 선수들은 여전히 CLI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분투와 같은 최근의 리눅스는(Mac OS도 그렇다) MS윈도우즈 못지 않은 GUI를 휼룡하게 구현하면서도, CLI고유의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직관과 논리의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는 리눅스의 사용을 권해본다.
나의 해묵은 소망은 내가 쓴 글에 내가 그린 그림을 삽화로 넣는 것이다. 동시에, 리눅스를 기가막히게 다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좀 거창하지만, 이러한 소망들이 한쪽에서는 직관이, 다른 쪽에서 논리가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일종의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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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논리 - 선수와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