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셜 맥루헌의 미디어의 이해에 대한 독전감을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책을 명작이라고 치켜세웠지만,
그것은 좀 성급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성급한 것일지 모르지만) 고백하면
나는 이 책의 난해함에 가벼운 좌절감을 느꼈다.
물론
이 책이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즉, 미디어는 인간을 확장시키고,
확장된 인간은 다른 세계에 살게된다.
인간을 다른 세계에 살게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에
미디어는 미디어 자체로도 중요하다.
는 부분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단순한 가치를 켜켜이 둘러싸고 있는
온갖 종류의
복잡한 수사
불성실한 생략
거만한 암시는
행여 이 책이 간결한 메시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도적인 모호함을 교묘하게 배치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이 들게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저작을 보면 예외 없이
존경보다는 그 실체에 대한 의혹과
그것을 까발리고 싶은 의협심이 앞선다.
물론, 의혹과 의협심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반항 끼가
단지 나의 무지에 의한 것이라면
기꺼이 그 가치가 보내는 가상의 비웃음에 가상의 부끄러움을 바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앞선 글에서의 성급함을
성급한 방법으로 부랴부랴 해소하려고 한다.
이 책을 명저로 치켜세웠던 성급한 독전감을 성급하게 철회합니다.
성급하게 태어나서 성급하게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는 나의 성급함이 부끄럽지는 않다.
오려, 성급함을 여유로운 척으로 포장한 근 한 달간의 시간이 부끄러울 뿐이다.
+ 난독증인가? 난번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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