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월드컵이 끝났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거리로 태극기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가 죽었다. 사람들은 국화를 들고 침착하고 뾰족하게 영정 앞으로 모였다. 두 사건은 만감이 교차하는 근대사의 두 얼굴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공통분모도 있다. 허무다. 허무는 마음을 공간에 비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 텅빈 상태로 정의한다. 마음이 텅빈 인간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좀비가 된다. 지금 내가 그렇고, 아마도 당신이 그럴 것이다. 텅 빈 마음은 공복을 채우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월드컵이 끝난 후, 그가 떠난 후에 마음이 텅빈 사람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쏟아지는 소식들을 과격하게 받아먹는다. 공복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을 지배하는 또 다른 힘이 있다. 탄핵과 쇠고기로 촉발된 분노의 배후 말이다. 불안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에 대한 불안, 내 자식의 몸이 상하게 될 것에 대한 불안. 허무가 채우려는 방향성을 가진다면, 불안은 해소되는 것을 방향성으로 한다. 불안은 허무에 비해서 실천적이고 쉽게 분노가 된다. 해소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허무는 저 치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다. 텅빈 마음을 채우는 방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끝났고, 노무현은 여기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 정권이 불안과 허무를 주의 깊게 구분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허무와 불안을 동일 선상에 놓고 조지면 허무는 곧 불안이 될 것이다. 제 나라 대통령의 죽음도 애도할 수 없는 지경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으로 인한 불안 말이다. 허무가 불안을 경유해 분노가 되면 그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2009/05/27 10: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