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집에 CPU 달린 장비나 AV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장비를 일절 들이지 않는 것이 오래된 정책이었다. 컴퓨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는 그의 물음을 재구성해서 물어본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집에서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대체로 수긍한다. 문명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미덕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여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는 다른 생활 패턴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 말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근태의 상징이 되었다. 그랬던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8시 전의 출근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내가 출근 시간인 10시를 준수하기도 버거워진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선 노트북을 하나 질렀다. 좀 유비쿼터스 하게 블로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핑계다. 나에게는 이미 블로깅을 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출중한 노트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좀 거대한 모니터를 함께 구입했다. 13인치의 작은 모니터에서 장시간 블로깅을 할 때 느껴지는 피로감 때문이었다. 또, 가끔씩 몰려오는 견딜 수 없는 적막감을 달래보고도 싶었다. 모니터는 TV튜너가 내장되어 있어서 TV로도 손색이 없었다.
우람한 근육질의 노트북, (제조사의 표현으로는)하이그로시한 모니터와 함께 있으려니, 생활은 자연스럽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최소한 2시 보통은 3시 심하게는 4시에 쓰러지듯 잠 속으로 미끄러질 때도 있었다. 노예가 되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의지라는 것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의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간의 선택이 점점이 모여 있는 느슨한 선이다. 이 선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은 다름 아닌 습관. 나는 습관을 신봉한다. 그럼, 습관은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 환경이다. 아무리 완고한 습관도 결국 환경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노트북과 모니터라는 환경은 습관을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의지는 무력했다.
노트북과 모니터를 살 때는 박약한 의지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의지는 그렇게 단단해 진다고도 생각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나는 이것들을 지배하는데 실패했다. 오려 지배당하고 있다. 그제부터 노트북을 회사에 두고 집에 갔고, 어제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했고, 새벽같이 일어나자마자 모니터를 박스에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 모니터는 이제 회사에 있다. 앞으로 평일에 노트북과 모니터가 집에 있는 일은 가급적 없을 것이다. 당분감 금단현상이 나를 괴롭힐 것이다.
2008/11/06 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