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문자 앞에서는 그의 생각을 쉽게 포기한다. 그것은 문자가 퍼스널리티를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통 싸울 맘이 안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이 하지만, 문자는 종이가 하므로.....
또, 독서란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사이의 은밀한 대화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보장된다. 문자와 문자를 읽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슬그머니 철회하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배후에 군중의 시선을 전제하는 TV토론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상호 설득을 통한 합의의 도출을 기대하는 것은 살짝 미친 짓이다.
사실은, 문자 역시 퍼스널리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학창시절에 형성된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교과서'이다. 우리는 예외없이 교과서를 통해 문자를 처음 만났다. 도대체 교과서의 권위에 누가 도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인터넷은 쌍방향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소통은 문자의 생명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이제 문자는 시퍼렇게 살아있다. 수천년 간 문자의 피지배민으로 억눌려 살았던 독자들은 댓글로 앙갚음을 한다. 이들이 저주하고 있는 것은 문자의 기득권이리라. 이 억압의 피해자들은 신경증적 악플도착을 해소할 대상을 찾아 떠돌고 있다. 네이버에서 정치코너의 댓글을 차단한 이 시각 그들은 어디매를 방황하고 있을까? 그들은 문명의 그늘이다.
무엇보다, 디지털은 매체를 만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기사와 병렬로 배치된 댓글은 선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한페이지 안에서 똑같은 가독성을 가지고 군중의 시선 앞에 선다. 트랙백은 포스트라는 동등한 계급을 갖기 때문에 더욱 진보된 장치라고 할만하다.
문자의 권위?
다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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