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안팍 윤리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을 죄의식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는 이 '용인'을 조작함으로써 인간을 지배한다. 그런 점에서 죄의식은 칼이고, 이 칼을 휘두르는 것은 사회다. 예를들어 생명에게는 원죄가 있다. 먹고살리즘 말이다. 생명은 생명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섭취를 다른 말로는 살해라 부른다는 점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살해인 샘이다. 그렇다고 섭취를 거부하면 결국 자신이 죽는다. 타인이건, 자신이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남을 살해하는 것이나, 자기를 죽이는 것이나 생명의 소멸에 관여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의 입장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 일 뿐이지만, 생명의 입장에서 자연은 잔혹하다. 그래서 인간은 이 잔혹사에 맞서기 위해서 연대를 발명했다. 다른 말로는 사회라고 한다. 사회는 인간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자연을 밖에 둔다. 사회에 속한 인간은 보다 효과적으로 자연을 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윤리는 이 연대가 유지되는데 중요한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 인프라는 인간 간의 살의를 억제하고, 살해를 단죄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사회 밖에 대한 살해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령 채소만 먹는다고 할지라도, (채소에 대한) 살해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시말해, 사회는 (삼겹살과 같은) 인간 아닌 모든 것을 섭취 하도록 '용인' 했고, (채식주의자인) 개인은 (채소 같은)동물 아닌 것에 대한 섭취를 '용인'했을 뿐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원죄가 해소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 용인을 조금만 조정하면 전쟁이 일어난다. '용인'은 인간에서 아군으로 좁혀진다. 윤리는 윤리적이지만,윤리적이지 않다. + 잔혹사의 배후 2009/06/19 10: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