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러면 안되지?"
"그건 니가 잘못한거야"
"이렇게 해"
"그건 말야"
이런걸 조건반사라고 하나? 친구의 불평이 끝나자마자 나의 입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쓴소리들이 쏟아진다. 이 순간 녀석과 나 사이의 공간은 재판소가 된다. 나는 배심원이고, 녀석은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인이다.
"모두들 너무 잘났어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훈수만 둘려고해"
녀석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물론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듣고 싶은 소리만 하는 것은 좋은 친구의 도리가 아니다. 나는 녀석을 위해 이러는 것이다.
우리는 남에 대해 얼마나 이성적인가? 훈수는 매우 주도면밀하게 길고 반복적으로 지속된다. 녀석의 약점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는 내가 이성적고, 직언도 서슴치 않는 진짜 친구라는 증거로 제출된다.
과연 그럴까? 이런 것이 녀석에게 정말 녀석에게 도움이 될까? 지금 녀석은 이성과 동행하고 있는 것일까? 감성과 함께 나타난 것일까? 녀석에게도 이성은 있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녀석은 그냥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하소연을 받아주고, 잘못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 "배설"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녀석은 배설을 하고 싶은 것이다.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서 클래식한 음악을 들으며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한다.고 배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인 식사가 있다면 감성적인 배설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 친구니까 똥도 치워줄 수 있는거지.....
이성의 시대, 감성이 살아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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