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가 학력을 속인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녀에 대한 비판은 주로 거짓말에 모아지고 있지만, 사실 거짓말은 흔한것이 되버린지 오래 아닌가? 그녀의 거짓말이 연일 톱으로 다뤄질 만한 가치가 있는걸까? 그녀의 진짜 죄는 다른데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능력에 의한 신분상승에 대한 먹물들의 강한 거부감(그녀가 단지 학력을 속임으로써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는가?)과 고졸학력을 속임으로써 고졸을 숨겨야하는 부끄러운 것으로 만든것에 대한 범고졸(학력에 대한 일련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이들)들의 당혹감은 아닐까?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의 관심은 이 비극적인 사기극의 배후에 있는 은밀하고, 폭력적인 힘과 그 힘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에 있다.
나는 그녀가 안쓰럽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녀를 등떠밀었을까? 우리는 비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경쟁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꼴찌는 설자리가 없다. 50명의 학생이 있다. 이 중에는 일등도 있겠지만 꼴찌도 있기 마련이다. 꼴찌가 열심히 공부한다면 일등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꼴찌가 없어지는 것일까? 공정함은 자본주의의 위대한 업적이다. 경쟁을 통해 꼴찌가 일등이 된다는 것은, 과거 어떤 사회시스템보다 인간적이고, 효율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에 의해 일등과 꼴찌가 결정나는 사회는 얼마나 부도덕한가? 그러나 경쟁을 통한 공정함이라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비정하다. 경쟁은 비정한 사회가 꼴찌를 처벌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꼴찌는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살아도 된다는 식이다. 자본주의는 꼴찌의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매타작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의 쫏겨남일 수도 있고, 철저한 무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이 하자! 꼴찌는 범죄가 아니다. 공정함을 위해, 효율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경쟁이라는 시스템의 필연적 희생자일 뿐이다. 희생자가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정상일까? 낙오만으로도 이미 가혹한 소외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에게 위로가 있었다면,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콤플렉스는 있다. 다만 없는 척할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두고, 자신도 그곳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비밀을 간직한 인간은 고독하다. 아니, 고독하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고독에서 콤플렉스로 연결되는 이 질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12억을 횡령해서 명품을 사고,가짜 학력을 만들어 교수가되고. 얼굴에 칼을 대서 미인이 된다. 한쪽에서는 거식증에 걸려 굶어죽고, 다른 쪽에서는 폭식증에 걸려 성인병으로 죽는다. 조증과 우울증. 카페인과 니코틴 그리고 알콜. 기술의 진보가, 자유의 확산이, 자본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었을까? 어느 시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좌절과 무의미함에 현대인은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고독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그전에 자신의 고독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분리, 어머니와의 분리, 타인과의 분리에 대한 불안은 인간을 고독하게하며, 고독은 콤플렉스가 창궐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콤플렉스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고독은 콤플렉스를 만들고, 콤플렉스는 인간을 고독하게 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데비존스의 심장. 누구나 이런 심장 하나쯤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
관련글 :
심심하다학원폭력의 최고봉고독과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