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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행성과 위성, 자아와 자의식

'' 사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 규정하는 것은 후천적인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자아로 부르고, 후자를 자의식이라고 맘대로 부른다. 자아는 때부터 주어지는 빌트인(built in)이다. 안에서 나의 외계를 관찰하고 인식한다. 반대로, 자의식은 후천적으로 득템하는 에드온(add on)으로 추정된다. 자의식은 자아와 다르게 제조된다. 이것은 자아를 복제하고 마치 인공위성처럼 외계로 쏘아 올려진다. 궤도에 진입한 자의식은 자아를 행성으로 삼고 주위를 뱅뱅 돌면서 자아를 관찰한다. 외계에 대한 관찰자인 자아와 자아에 대한 외계의 관찰자인 자의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럼 자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것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자의식을 생산하는 메이커는 자기혐오고, 이것은 대체로 사춘기의 시대적 우울을 자원으로 한다. 사춘기의 극심한 고통은 살기 위해서 자아를 복제하는데, 복제된 자아는 일단 고통을 분산시킨다. 그 메커니즘의 핵심이 객관화다. 자의식은 주관 속에 갇혀있던 자신을 객관화한다. 객관화는 자기를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타인인 양 무심하게 바라보면, 견딜 없는 것도 견딜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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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iel 2009/08/14 23:47 L R X
스스로를 타인화 해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동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에 대해서도 견딜 수 있게 되지만... 기쁨도 느낄 수 없게되고 더 이상 마음이 성장하지도 않게 되더군요.
egoing 2009/08/15 09:59 L X
그럴지도요. 그런데 저의 경우 자신의 객관화란 고통도, 기쁨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어요? 좀 더 정확하게는 고통의 하한, 기뿜의 상한이 정해진다고 할까요?
리카르도 2009/08/16 03:28 L R X
자의식이라고 말씀하신건, 아마도 시각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고,
자아라고 말씀하신건, 청각적인 속성을 지닌것같네요.

프로이트는 자아가 욕망을 억제함과 동시에
기억을 상실하기 때문에
과거의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그러더군요.
청소년기에 억제된 감각이 다시 눈을 떳을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키워졌기 때문에
그제서야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거라고 말입니다. :)
egoing 2009/08/22 00:42 L X
청각과 시각... 재미있군요. 딱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 혹시 어떤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주실 수 있는지요. 물론 옵션입니다. ^^

그리고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다소 과학보다는 종교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해서 전제를 검증하지만, 종교는 전제에서 시작해서 논리를 기정사실화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언급하신 프로이트의 부분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리카르도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욕망을 억압하면서 기억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요. 물론 알려주신 부분은 감사하게 봤습니다. :)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프로이트의 한계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한계라는 생각도 들어요.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어떤 기술의 설계나 사상을 소스에서부터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최종적인 아웃풋을 분해하면서 탐구하는 엔지니어링의 기법입니다. 프로이트를 기웃거려 봤지만, 어렵기도 하고,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ㅎㅎ 전 에리히 프롬을 아주 좋아합니다.
리카르도 2009/08/23 22:19 L X
이고잉님의 생각이 저의 평소 생각들과 너무나 흡사해서
가끔식은 내가 쓴 글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괜시리 글을 적었다가 서로간의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매번 눈팅만 하다 아주 가끔씩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 적고 있는 이 댓글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적었다는걸 미리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청각과 시각은 모두 외부에서 내부로 입력되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둘다 뭔가를 바라봄에 이용되곤 하지요.

그런데 청각의 경우 매우 시공간적인 제약이 따릅니다.
듣는 순간, 그때 뿐입니다. 공기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매우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것으로(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Cathectic enery)
인간의 리비도와 연계되어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외부로만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반면 시각의 경우, 언제든지 보고싶으면 다시 볼 수 있는 특성을 지닙니다.
매우 관조적이고 그래서 청각보다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흥미로운건, 바라봄이란 단지 외부 뿐만이 아니라
내부로도 가능합니다.
리비도에서 해방되었다고나 할까요.

위에서 말한건 맥루헌이 즐겨쓰는 청각과 시각적 속성들입니다.
주의해야 할것은, 위의 시각이란 오로지 "활자적 또는 계량된" 시각을 뜻한다고 봐야
의미가 정확하게 통할 것 같네요.
(제가 맥루헌과 프로이트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두 이론을 섞어서 마시길 즐겨합니다.)

프로이트의 경우 지금 후기이론 책을 잡고 씨름중입니다.
꽤나 많은 꺼리들을 발견했고, 머릿속에서 공상중입니다
그 재미 덕택에 요즘 블로그도 별로 안하게 되었네요.
약 반년동안 천천히 소화해나가며 잘근잘근 한 단어 한단어 소화하고 있습니다.
언제 시간나면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유가 2.0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교도 인간의 감성들을 가지고 이론화 했었으니 말입니다.. :)

에리히 프롬도 궁금해지는데.. 프로이트 만큼이나
어려울것 같아 괜시리 걱정되네요.
알고 싶은건 많으나 능력이 부족하니 말입니다.
이고잉님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책이 세권정도 있던데, 어떤책이 가장 좋을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무려 3만권을 읽으셨다고 하니..)

ps : 잠시 찾아봤는데, 에반게리온의 주제가 "Escape from Freedom"와 흡사한것 같네요.
egoing 2009/08/25 10:17 L X
에리히 프롬은 아주 친절한 편입니다. 프로이트가 노자나 장자 같다면 에리히는 글을 길게 쓰는 공자 같다고 할까요? ㅎㅎ

말씀하신 부분은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고, 금방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내요. 천천히 생각해볼 생각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항상 배우내요. :)
쿨짹 2009/08/23 00:21 L R X
(이고잉님) 취미생활 :)
egoing 2009/08/25 10:09 L X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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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
matrix 영화 매트릭스가 그 전까지의 SF 선배들과 구별되는 것은, 이것이 소프트웨어와 정보에 대한 판타지라는 점이다. 이전까지 SF의 중심테마는 주로 기계문명의 힘과 그에 대한 불안이었다. 스타워즈가 그랬고, 터미네이터가 그랬다. 매트릭스는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을, 논리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페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그 중심에 스미스 요원이 있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네오가 아니라 스미스 요원이다. 네오야 성서적 메시아의 SF적 재탕일 뿐이다. 네오의 등장은 터무니 없지만, 스미스 요원은 '일리'있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다시 스미스 요원을 만들었다. 스미스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생명체라는 점에서 그 조부모인 인간이나, 그 부모인 기계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에게는 물리적인 육체가 없다. 그에게 육체란 소프트웨어이고, 정신은 정보이다. 이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사뭇 충격적이다. 생산자와 복제자의 차이다.

2편부터 스미스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게 된다. 네오 앞에 나타난 스미스는 자신을 무한히 복제해 네오를 물리친다. 생산과 복제는 어떤 관계일까?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생산과 복제는 동일하다. 하지만, 생산은 자본과 자원 무엇보다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복제는 이런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소프트웨어에서의 복제란 약간의 메모리 증가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특히 복제와 함께 스미스 요원의 또 다른 필살기인 감염은, 타인을 자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하다. 이것은 메모리의 추가적 점유조차 유발하지 않고, 자신을 무한 증식하는 방법이다. 이 복잡한 영화에서는 다양한 긴장이 존재하지만, 복제자에 대한 생산자의 공포야말로 영화가 뿜어내는 불안과 공포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은 단지 워쇼스키 남매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초에 세계최고의 IT 기업은 IBM이었다. 그들은 하드웨어를 만들었다. 얼마 후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 MS가 등장했고, 곧 세계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다시, 구글이 등장했다. 구글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최고의 기업을 향해 행군중이다. 헤개모니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다시 정보로 이동하고 있다. 다시말해, IBM이라는 생산자는 MS라는 복제자에게, MS라는 생산자는 다시 구글이라는 복제자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있다. 매트릭스가 고도화 될수록 전무후무한 복제자가 출현할 것이다.

얼마전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직간접적으로 연류된 인사만 1만명, 거래규모로는 1조원이 넘는 거대 산업에 대한 불법성을 따진 것이다. 이것은 두개의 정부 간의 긴장을 암시하는데, 두개의 정부란 오프라인의 전통 정부와 온라인의 신흥 정부를 말한다. 두개의 지배자 간의 긴장은 이미 곧곧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 격전지가 약관이다. 약관이란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양식을 규정한다. 그렇다보니, 게이머들에게 약관은 헌법의 영향력을 상회한다. 게임업체는 계정압류를 약관에 반영해 줄 것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계정압류란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오프라인으로 치면 사형에 준하는 극형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견해가 없고, 입장이 없다. 게임산업은 육성해야겠고, 제 자식들이 게임하는 것은 지독히 싫어하면서, 정작 자신은 게임을 해본 적도 없는 관료들에게 견해를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갈등은 좀 더 구체적인 충돌로 고도화 될 것이다.

가상의 세계란 무엇일까? 이걸 논하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가상의 자아다. 자아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기억과 소통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나'란 서로 다른 삶의 문맥에 놓여진 어제와 오늘의 '나'가 기억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 '나'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서 타인의 인식 속에 살아간다. 이 두가지가 있다면 자아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깃드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채팅과 전투를 통해서 타인과 소통한다. 또 랩업과 인벤토리를 통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기억한다. 블로거는 어떤가? 이들은 포스팅의 형태로 기억되고, 댓글과 트랙백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한다. 이것은 휴대폰과 구분되는데, 휴대폰은 자아의 두가지 구성요소 중 소통의 도구는 있지만, 기억되지 않는다. 통화가 끝나면 자아가 소멸되는 것이다. 즉 가상의 자아란, 실제 자아가 철회 되었을 때도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 자아가 있다면 그것이 게임이건, 웹이건 세계가 된다. 세계가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있다면 그 곳이 세계이다.

그런데 실제의 자아가 가상의 자아로부터 철회할 수 없다면? 그곳이 바로 매트릭스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현실이다. 나에게 온라인이란 오프라인 보다 광대한 영토이다. 이 영토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측정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가? 특히, 게임방에서 몇날 몇일을 라면으로 연명하는 이들에게 오프라인이란 그저 집과 게임방 사이을 연결하는 귀찮은 물리적 한계에 불과하다. 이들은 게임 속에서 돈도 벌고, 친구도 만들고, 세력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생노병사는 점차 가상의 세계에 종속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보상심리나, 피해의식의 발로가 아니다. 삶의 터전의 문제다. 이들은 이미 가상의 세계로 이주한 것이다. 영화 속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영화 속의 인간들은 매트릭스로부터 철수 할 수 없다. 자신이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천적 지배다. 기계는 어떤가? 그들은 매트릭스의 창조자다. 그들은 인간을 건전지로 만들기 위해서 매트릭스를 지배하지만, 실은 자신들도 매트릭스에 지배되고 있다. 2편에서 등장하는 하먼의원과 네오의 대화를 들어보자.

네오 : 이 기계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건 아니죠.
하먼 : 그래, 당연하지,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
           그런데 자꾸 의문이 생긴다네. 대체 지배란 멀까?
네오 : 원하면 기계를 꺼버릴 수 있죠.
하먼 : 맞아 그렇지. 그게 지배야. 여차하면 부술 수 있지.
          그런 다음엔 조명과 난방, 공기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결국 인간이나, 기계나, 스미스 요원이나 매트릭스의 세계에 종속된 것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와 다를까? 가상의 세계를 둘러싼 이슈 중 가장 뜨거운 것이 중독이다. 대체 중독이란 멀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중독된 것일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프라인 입장에서는 중독이지만, 온라인의 입장에서는 열정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이동, 대탈출을 이 시대는 중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
      + 세가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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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ay 2009/01/02 07:25 L R X
지금은 비록 사각형 작은 모니터가 메트릭스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사각형 모니터가 창문처럼 큰 벽처럼 점점 커지겠죠.
egoing 2009/01/03 00:39 L X
모니터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 하내요.
비밀방문자 2009/01/02 07:26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ghost 2009/01/02 10:25 L R X
흠 본질불변 신봉자로서 (X-FILE, 음모론자 등등 ) 환경과 방법이 틀려졌지 본질은~ 변하지 않다고 생각하네요. The truth is over there? 이던가? May the force be with you.
egoing 2009/01/03 00:40 L X
예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본질이 발현되는 것을 막고 있던 장애들이 제거되면서, 우리 안에 있지만, 우리도 몰랐던 본질들을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다중성이겠죠.
똘똘 2009/01/02 16:40 L R X
철학의 철자도 모르지만 Matrix는 지금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이지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민망하지만 예전에 쓴 글도 트랙백 걸고갑니다. 성격에 맞을지는 ㅋ 판단해 주셔요~!
egoing 2009/01/03 00:41 L X
잘 볼께요~
아다리 2009/01/02 23:25 L R X
만들어낸 것이 어느 순간 날 만들고 있는 모호함과 헷갈림을 너무나 '영화적으로' 그려낸 영화였어요.
egoing 2009/01/03 00:41 L X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Read&Lead 2009/01/06 00:32 L R X
자아..
실체의 존재 여부가 불투명한 개념인 자아는 인간 뇌의 쾌락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만 하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아가 중심에 존재하는 오프라인 세계.. 어쩌면 그런 오프라인 세계에 대한 인지 자체가 뇌를 위한 가상 시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체 불투명한 자아.
자아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오프라인 세계.
뇌는 자아 느낌을 강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환상을 창조하고, 그 환상 속에서 발전한 기계 문명은 온라인이란 시공간을 만들어내고..

뇌를 위한 가상세계(오프라인)가 또 한 번의 가상세계(온라인)를 만들어낼 때 그 위력은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뇌는 계속 자가증식을 반복하면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스미스 요원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짧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여기까지만 적어 놓고, 다음에 다시 한 번 생각을 복제/증식/증폭시켜볼 생각입니다.

귀한 글 정말 감사합니다. ^^
egoing 2009/01/07 00:50 L X
자아와 가상의 세계란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와 이를 하드웨어로하는 논리적 세계인 온라인.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온라인 게임에는 두가지 공간이 있는데 하나는 마을과 필드입니다. 지금까지의 온라인 게임은 전투를 벌이는 필드를 강조했습니다만, 마을을 강조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을에서는 수 많은 필드로 이동할 수 있고요. 필드는 다시 또 다른 마을과 연결되어 있는거죠. 어떤 필드는 카트라이더를 할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와우를 할 수 있고, 이렇게 가상의 공간을 확장하다보면, 가상의 세계란 매우 중첩된 세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Read&Lead 2009/01/07 09:27 L X
자아와 가상..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계속 생각을 해볼 생각입니다. egoing님과 계속 대화를 나눠봐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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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종교
고독과 종교 종교와 고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설교이다.
고독에 대한 노목사의 깊은 성찰에 숙연해진다.


PS.
요즘 기독교가 공적이 된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독교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뿌리 깊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기독교에 대한 외부 비판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개독교라는 융단폭격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당했을까? 가슴이 아프다.

한명수 목사는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기독교 장로교회의 초대 총회장을 지낸 거물급인사이다. 그러나 그는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있었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저항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전선이 흐려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현실은 디지털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 장로교의 한명수 목사, 평화재향군인회의 표명렬 장군의 외로운 싸움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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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종교
심심하다! 2007/07/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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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콤플렉스 대학교수가 학력을 속인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녀에 대한 비판은 주로 거짓말에 모아지고 있지만, 사실 거짓말은 흔한것이 되버린지 오래 아닌가? 그녀의 거짓말이 연일 톱으로 다뤄질 만한 가치가 있는걸까? 그녀의 진짜 죄는 다른데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능력에 의한 신분상승에 대한 먹물들의 강한 거부감(그녀가 단지 학력을 속임으로써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는가?)과 고졸학력을 속임으로써 고졸을 숨겨야하는 부끄러운 것으로 만든것에 대한 범고졸(학력에 대한 일련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이들)들의 당혹감은 아닐까?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의 관심은 이 비극적인 사기극의 배후에 있는 은밀하고, 폭력적인 힘과 그 힘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에 있다.

나는 그녀가 안쓰럽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녀를 등떠밀었을까? 우리는 비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경쟁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꼴찌는 설자리가 없다. 50명의 학생이 있다. 이 중에는 일등도 있겠지만 꼴찌도 있기 마련이다. 꼴찌가 열심히 공부한다면 일등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꼴찌가 없어지는 것일까? 공정함은 자본주의의 위대한 업적이다. 경쟁을 통해 꼴찌가 일등이 된다는 것은, 과거 어떤 사회시스템보다 인간적이고, 효율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에 의해 일등과 꼴찌가 결정나는 사회는 얼마나 부도덕한가? 그러나 경쟁을 통한 공정함이라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비정하다. 경쟁은 비정한 사회가 꼴찌를 처벌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꼴찌는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살아도 된다는 식이다. 자본주의는 꼴찌의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매타작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의 쫏겨남일 수도 있고, 철저한 무관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이 하자! 꼴찌는 범죄가 아니다. 공정함을 위해, 효율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경쟁이라는 시스템의 필연적 희생자일 뿐이다. 희생자가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정상일까? 낙오만으로도 이미 가혹한 소외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에게 위로가 있었다면,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콤플렉스는 있다. 다만 없는 척할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두고, 자신도 그곳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비밀을 간직한 인간은 고독하다. 아니, 고독하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고독에서 콤플렉스로 연결되는 이 질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12억을 횡령해서 명품을 사고,가짜 학력을 만들어 교수가되고. 얼굴에 칼을 대서 미인이 된다. 한쪽에서는 거식증에 걸려 굶어죽고, 다른 쪽에서는 폭식증에 걸려 성인병으로 죽는다. 조증과 우울증. 카페인과 니코틴 그리고 알콜. 기술의 진보가, 자유의 확산이, 자본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었을까? 어느 시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좌절과 무의미함에 현대인은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고독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이며, 그전에 자신의 고독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분리, 어머니와의 분리, 타인과의 분리에 대한 불안은 인간을 고독하게하며, 고독은 콤플렉스가 창궐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콤플렉스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고독은 콤플렉스를 만들고, 콤플렉스는 인간을 고독하게 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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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존스의 심장. 누구나 이런 심장 하나쯤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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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폭력의 최고봉
고독과 종교  2007/07/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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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07/07/26 10:22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fulldream 2007/09/24 21:16 L R X
제 포스트에 걸린 트랙백을 타고 방문했습니다.
님의 글을 보니 콤플랙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도는군요.
우리 사회가 점점 정글이 되가고 있기 때문에 맘놓고
드러낼 수 없는 뭔가가 계속 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egoing 2007/09/24 23:38 L X
독일에서 유학중인 친구가 얼마전 귀국했습니다. 역시 타인이 되어 보아야 자신을 더 잘알게 되는 걸까요? 그 친구가 속해있는 커뮤니티에서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분류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들을 보여주더군요. 유럽이라는 사회에서 그 친구가 느낀 점이라면 타인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병적인 현상의 원인은 경쟁입니다. 경쟁의 필요를 폄하하지는 않습니다만, 경쟁으로 인한 역효과가 분명하기에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정한 사회는 비극을 낳기 마련이니까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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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심심하다!

소통의 배후에는 침묵이 있어야 한다. 침묵이 전제되지 않는 소통은 빈곤하다. 침묵은 자아와 소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음악을 듣고, 핸드폰과 메신저로 수다를 떤다,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단다. 쇼핑을 하고, 게임을 한다. 실시간으로 인터넷 뉴스를 본다. 침묵은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침묵조차도 '심심함'으로 폄화된다. 기술이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혀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자아가 소외되면서 타인과의 거리가 좁혀진다면 이 것이 무슨 소용일까? 껍데기끼리 만나는 것인데. 침묵과 소통의 균형만이 타인과 자아의 진정한 만남을 가져다 주고, 이러한 만남을 통해 타인과 자아가 풍요로워지는게 아닐까? 자아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관련글 :
커뮤니케이션 과잉과 컨텐츠 빈곤
컴플랙스
고독과 종교

2007/07/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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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심리 2007/12/25 22:34 x
제목 : 지성인에게는 침묵이 초합금제트다.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어쩌면, 침묵은 금 정도가 아니라, 초합금제트일 수도 있다. <마징가제트>를 만든 재료라는 그 초합금제트 말이다. 이 초합금제트라는 신재료 ..
비밀방문자 2007/07/26 10:27 L R X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심리 2007/12/25 22:33 L R X
'침묵이 심심함으로 폄하된다'는 현실이 슬픕니다. 깊이 사귀는 연인들은 단지 같이 낙엽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껴안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더군요.

술 취해서 떠들어대면 친해진다고 생각하는 문화도 슬픕니다. 뭔가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할 듯 싶습니다.

트랙백 감사합니다. 저도 답례로 트랙백 해드리겠습니다.
Mikolev 2009/06/06 08:59 L R X
온라인에선 덧글을 달지 않으면 "읽었습니다" 표시가 나지 않으니 아쉽습니다. 달리 말은 못하더라도 조용히 함께 생각해주고 있는데 말이죠.
egoing 2009/06/07 09:32 L X
그래서 저는 방문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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